할머니 어머니 고모 숙모 이모 언니 올케 조카 손자 나 ➀
며칠 전 대전에 사시는 고모님을 방문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더 연로하신 누님’을 문안하기 위한 길에 동행한 것이다.
‘내유외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여성, 우리 고모. 이제는 너무 쇠약해진 탓에 눈도 거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그 우아하고 고운 턱 선은 뭉그러지고 얼굴 골격은 조그맣게 오므라들었다.
내 기억 속 고운 모습은 고모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에서만 증명이 된다.
누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 전에, 누님을 살아생전에 뵈어야 한다는 일념에 비행기를 타고 열차를 타고 마실 나선 길이다. 만나서는 서로의 안부는 잠깐, 손자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형제간은 참 미묘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에게서 나서 어릴 적 함께 지낸 그 추억과 기억을 자양분 삼아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근처에 살면서 자주 보며 살아가는 가족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멀리 떨어져서 살아간다. 직장으로 인해, 혹은 이런 저런 갈등으로 인해서 옆에서 얼굴보기 민망해서 떨어져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의 '누나 사랑'은 애틋하다. 무엇을 물질적으로 잘해주어서 라기 보다는 마음으로 한가득 생각하고 찾아보고 신경 쓰려 하신다. 형제들은 물론 그 형제들의 자식들까지 신념으로 챙기고 신경 쓰면서 살고 계신다. 이런 저런 가족사를 둘러보는 일들을 자신의 인생의 미션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어머니 (우리 할머니)를 대신해서 당신(우리 아버지)가 대신해서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물론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고 그리 해내려고, 당신의 도리를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평생 그리 하고 계시다.
나는 그리하지 못하고 산다. 사느라고 여유가 없어서, 겨를이 없어서, 살기 바빠서, 내 앞가림하기도 버거워서 등등 구차한 변명대면서 수많은 시간들을 보낸다.
어쩌다, 거의 찾아뵙지도 않던 친지나 조카들 결혼식장에서, 혹은 조문 시에 뵐 때에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자세는 움추러 든다. 그래도 그 행사가 끝나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인본주의 마음들을 잊어버린다.
할머니 어머니 고모 숙모 이모 나, 그리고 언니 올케 조카와 손자까지.
이 누구누구의 라인을 따라 점철된 여성의 계보 선상에서 나를 생각해 본다.
언제 다시 뵐지 모르는 고모와 그 동생인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 옆에 아버지의 아내, 오랜 세월 고모와 자매가 된 나의 어머니를 지켜본다.
가족을 생각한다. 나를 생각한다. 결국은 나로 귀결된다. 잘 살아내야 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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