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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출장

간천(澗泉) naganchun 2019. 3. 24. 10:00

비즈니스 출장

- 일본 출장의 추억 1993




지금은 있지만 예전에는 없던 사물들과 그런 시절의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예를들면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나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나 뭐 많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현듯 일본 출장을 갔던 일들이 생각난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도 출장을 간다. 1990년대 한국 회사원들에게 일본 출장은 견문을 넓히는 가장 가까운 출장지였다. 전시 컨벤션이 앞서 있던 일본의 경제와 산업 문화 발전 상황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 출장을 많이 갔다. ‘마꾸하리 메세’ 라고 하는 대형 컨벤션 센터에서는 일 년 내내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공업박람회에서 전자박람회, 식품박람회, 자동차박람회, 만화박람회, 게임박람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볼거리들이 선보여지는 곳이다.


그 때는 지금처럼 바퀴달린 여행가방도 백팩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행사장에서 받는 다양한 자료인쇄물이나 자료용으로 구입한 책들을 끙끙거리며 짊어지고 왔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짐을 맡길 때 그런 자료를 담은 짐 무게가 규정보다 초과해서 ‘오버 챠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행사를 보고 나면, 동경에서는 대부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로 간다. 일본 출장 간 김에 선물 혹은 부탁받은게 있어서다. 테이프레코더, 카메라, 전자시계, 오디오제품, 밥솥, 보온병 등 같이 휴대해서 가지고 올 수 있을 만큼의 부피를 지닌 전자제품들을 사기 위해서이다.

신쥬꾸의 카메라매장도 대부분 필수 코스이다. 이 곳 역시 다양한 전자제품을 각 층별로 전시한 종합마트이다. 그다음에는 키노쿠니야서점에서 중요한 책을 사고, 그 당시 유행하는 j-pop 가수나 듣고 싶었던 음악 테이프 등을 산다. 문방구에 들러서 특이한 문구류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드럭스토어 같은 곳에서 간단한 화장품이나 위장약이나 파스 같은 약품들, 슈퍼마켓에서는 가루커피, 카레, 후리카케 같은 간편식을 구입한다.


식사는 대부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그리고 신기하기도 해서, 자동판매기로 식권을 사서 먹는 작은 라면집이나 소바집, 튀김 같은 것을 추가로 주문해서 얹어서 먹는 우동 집에서 먹곤 했다. 시간이 될 경우에는 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식품가에서 조리되어진 다양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전철 역으롤  향하는 길에 보면 대형 게임 센터들이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한창 유행이었던 ‘인형뽑기’ 기계가 그 당시에 그곳에서 유행이었던 것 같다. 곳곳에 즐비하게 설치된 투명기계 안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봉제 인형이 가득 들어있어서 그것을 낚는 것이다. 그 인형들은 품질이 좋아 보였고 매우 귀엽고 호감이 가는 상품들이었다.  나는 인형뽑기를 할 줄 몰랐다. 처음 보는 기계이기도 하고 해서 일본 현지 친구들이 대신 해주었다. 그들은 매우 익숙해서 금새 20여 개 인형을 낚을 수 있었다. 그것을 모두 나보고 가지라고 해서 그것으로 사무실 직원들 출장 선물을 대신한 경우도 있었다.


출장의 마지막 날 저녁에는 남은 돈을 모아서 야키니꾸집이나 스시집 같은 곳에서 먹고 싶었던 것을 먹기도 하지만, 대체로 공항 면세점에서 일본의 전통장식품을 직원용 선물로 사기 위해서 여행 경비를 남겨 둔다. 공항 면세점이라고 해도 그다지 대단한 물건들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출장 객들은 화장품이나 담배, 양주 같은 것을 샀다. 개인 허용량보다 많이 사서는 동료들의 짐에 나누어 가지는 풍경도 자주 목격한다. 이 술들은 회사로 가서 상사들에게 출장다녀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로 드리기도 한다. 


숙소는, 좋은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여건의 비즈니스맨들은 몰라도, 대부분 회사원들은 저렴한 숙소나 비즈니스 호텔을 찾는다. 박람회 등을 견학하기 위해서 가는 출장의 경우에는 삼삼 오오 가는 경우가 많다. 동경의 경우에는 신오오쿠보에 있는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어번롯지’ 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민막같은 곳이다. 숙박비도 저렴하지만 아침에 한국 출장객들을 위해서 조식이 한국식으로 나온다. 그 곳은 항상 붐벼서 숙소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근처에는 고시원 같은 분위기의 작은 원룸을 임대해서 다시 출장객들을 위해서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연립주택같은 곳을 전체 주인이 빌려두고 출장객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에어비앤비 같은 것이다. 박람회가 한창인 봄이나 가을 시즌에는 이런 숙소를 구하기 힘들어서 한국인 유학생의 자취방에서 출장 기간 신세를 진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유학생의 친지가 출장 동료여서 가능한 일이다.


그 개인 자취방을 찾아가는 길은 물어 물어서 주택가에 위치한 골목 골목을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일정이 끝나서 자료를 가득 어깨에 짊어지고 터벅 터벅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간 골목에 작은 돈까스 집이 있었다. 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는 곳으로, 바 테이블에 의자 몇 개 있는 작은 곳이다. 주인은 계속 분주하게 양배추를 썰고 주방을 닦고 국물을 내고 바쁘다. 혼자서 묵묵히 일을 한다. 주문과 동시에 보는 앞에서 바로 돈까스를 튀기고, 가늘게 채 썬 양배추를 풍성하게 접시에 담아 낸 정식이다. 아주 맛이 있었다. 그 골목길의 아주 작은 가게에서 맛본 ‘돈까스 정식’의 맛은 지금까지도 그리운 소중한 추억이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개인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에 눈치 보면서 지냈던 좁은 숙소, 갈아타기 연속의 힘든 전철 타기와 계단 오르내리기, 습한 기후와 타이트한 일정. 자료를 잔뜩 가져가야 한다는 중압감,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부탁받은 선물을 찾아서 사야 한다는 압박감, 돌아가서 출장 보고서를 쓰고 정산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등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출장의 묘미는 개인 여행과는 잔잔한 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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