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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굿 패밀리

간천(澗泉) naganchun 2013. 5. 27. 04:48

 

굿 패밀리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숙모 언니 나.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족 네트워크를 여성을 중심으로 나열해 본 것이다. 가족 네트워크는 경조사 현장에서 그 선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친척이나 조카들을 당신 힘껏 챙기고 배려를 하고 집안일을 돌보고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여기고 계신 것 처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부차적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지방에서 올라 온 고모의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거쳐 가는 하숙집과도 같았고. 고향에서 올라 온 친지들은 인사차 꼭 들러 가는 코스였다. 그럴 때만다 형제가 많아 괜히 번잡한 것을 굉장히 꺼려했던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우리 가족만 그냥 저냥 잘 지내면 될 텐데. 오히려 우리보다는 친척들에게 더 잘해주시는 기분도 들어 질투심도 나고 그랬었다.

 

이제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함께 지내며 서로의 안부를 알고 지내던 우리들이 결혼을 하면서 아니면 각각의 인생살이로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안부를 알지 않고 지내게 된지 10여년이 지난다. 그러던 것이 아주 가까운 가족의 경조사에서 만나 얼굴을 보고 반가워하고 아득했던 그 때의 생각들을 더듬으며 그리운 시간을 가진다.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출발이다. 아, 아버지는 이런 기분과 정다운 마음을 이미 익히 알고 계시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이어가게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통해서 경조사에 참가하게 되고 가족친지들의 사정에 십시일반으로 보태고 인사하며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일은 전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었는데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조카의 결혼식에서 사촌들과 친지분들을 만났다. 너무 반갑고 고마운 얼굴들이다. 마음들이다. 나는 그동안 번잡하다는 생각으로,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전혀 그런 경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그런 일은 모두 아버지의 몫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젠 내가 해야 할 차례다. 그런 생각이 든다. 딸이지만 그래도 아들들과 함께 나도 챙겨야 하고 한 세대 앞에는 우리가 그 때의 나이 드신 친지분들처럼 조카들의 아이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축복해주는 장로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게 삶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듯 하다.

 

세대교체는 경조사 현장에서 실감이 난다.

경조사 현장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뿌리를 생각하고 나의 가족의 울타리를 넓게 넓게 아우르게 하는 힘이 있는 장이다. 잘 된 사람이든, 생각보다 그냥 저냥 보통 사람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해서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일지라도 자격지심이나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어릴 적 나를 만나게 되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경조사 현장에는 아버지가 계시다. 굿 패밀리의 중심이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끼는 거대 가족의 마음이 징하게 느껴져서 뜨거워진다. 우리 각자는 모두 자신의 색깔의 끈을 가지고 돌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모두의 끈을 두 손에 꽉 잡고 든든하게 의연하게 온화하게 자리하고 계신 아버지가 핵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그 주변을 이리 저리 돌면서 아름다운 매듭 문양을 짜낸다. 핏줄로 연결되고 정으로 단단하게 매듭지어진 우리 가족의 시간들을 함께 공유한다. 그것으로 족한 시간이다.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