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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중국 한시

別董大(별동대)

간천(澗泉) naganchun 2010. 11. 12. 04:48

 

 

別董大(별동대)

 

 

 

 

당/唐 고적/高適

 

 

--그대를 보내며--

 

 

천리에 뻗친 구름 햇볕을 가렸는데

북풍은 기러기 불고 눈은 분분히 내려

가는 길에 아는 이 없다고 근심하지 마라

천하에 그대를 누가 모르리.

 

千里黃雲白日嚑(천리황운백일훈)

北風吹雁雪紛紛(북풍취안설분분)

莫愁前路無知己(막수전로무지기)

天下誰人不識君(천하수인불식군)

 

 

*황운(黃雲)-먼지를 머금은 구름. *백일(白日)-태양. *훈(嚑)-어두컴컴하다. *취(吹)-불다. *분(紛)-어지럽다. *분분(紛紛)-꽃이나 눈이 날리는 모양. *수(愁)-근심하다. *지기(知己)-아는 사람. *식(識)-알다.

 

감상

 

천리 아득히 먼지 머금은 구름이 일어 태양을 가리는구나. 북풍 찬바람이 기러기를 남쪽으로 날아가게 하고, 눈은 분분히 내리는구나. 가는 길에 아는 이 없다고 근심일랑 하지 마라. 이 세상에 그대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터이니까.

전반에서는 황진이 날리고 아직은 가을인데 눈이 흩날리는 북방 변경의 살벌한 풍경을 그리고, 후반에 먼 길을 떠나는 벗의 불안한 심경을 위로하려 애를 쓴다.

 

작자

고적(高適)(702-765)

 

당나라 성당기의 시인이다. 자는 달부(達夫), 중무(仲武) 창주발해(滄州渤海)(산동성/山東省) 사람이다. 20세에 장안에 들어가 벼슬을 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연(燕), 조(趙), 양(梁), 송(宋) 일대를 돌며 발랑 생활을 하면서 빈한하게 지내다가 이백, 두보와 알게 되어 시를 쓰고 수렵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749년에 장구고(張九皐)의 추천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봉구위(封丘尉)를 제수받았다. 그는 이런 벼슬에 대하여 "장관을 섬기자니 내 마음 쓰라리고 백성을 채찍질하자니 비참한 일이어라"라고 하면서 사직하고 하서(河西)로 갔다. 안사의 난이 폭발되었을 때 관찰어사의 신분으로 가서한(哥舒翰)을 도와 동관(潼關)을 지켰으나 동관이 함락되자 그는 임금이 머물고 있는 행재소에 가서 현종에게 군사 형세를 진술하여 현종과 숙종(肅宗)의 총애를 받았다. 영왕(永王)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고적은 후에는 산기상시(散騎常侍) 벼슬까지 하다가 장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변경을 노래한 시인으로서 잠삼(岑參)과 함께 고삼(高參)이라 병칭된다. 잠삼이 변경의 기이한 풍물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노래한 데 비하여, 고적은 수비대나 원정군의 전투적인 생활을 비장한 구조로 영탄한다.

고적은 뜻이 크고 공명심이 강하며 절개가 있는 시인이었다. 2백여 수에 달하는 그의 시는 대부분 방랑생활을 할 때 창작한 것이다. 그가 젊었을 때 쓴 우수한 작품들은 주제 사상적 내용이 비교적 풍부한바 자기의 생활 경력과 체험에 기초하여 그 시대의 상황을 심각하게 반영하였다.

고적은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백성을 강압하는 벼슬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실지 생활 가운데서 찾아낸 고귀한 사상적 견해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백성들과 사상 감정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시가는 낭만주의적 색채보다 사실주의적 요소가 더 많았다. 시 풍격은 장엄하고 풍만하며 필치는 소박하다. 두보와 기타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는 기백이 있고 시적 재질을 잘 보여 주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고상시집(高常侍集)>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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