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 이야기(5)
== 「케플러의 법칙」 발견으로 천문학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9, 에피소드1 : 마녀 재판을 받은 케플러의 어머니
케플러의 어머니는 <작고, 야위고, 피부색이 검고, 말투가 나쁘고 다투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뒤틀리고, 거칠고, 수다스러운 늙은 여인>으로 묘사되었지만, 1615년에 70세의 나이로 마녀사냥의 관리에게 고발당하여 관리들의 손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 케플러는 어머니를 감옥에서 풀어 주려고 애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4년간의 옥중생활 끝에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그녀는 자백하지 않았다. 재판소는 그녀에게 고문 도구를 보여주며 자백을 압박했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부인한 채 기절했다. 결국 그녀는 석방되었다. 당시에는 마녀가 체포되어 무죄로 풀려나는 것이 드문 일이었다, 어머니는 석방된지 6개월 후에 사망했다. 그 재판이 진행 중에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 중 세 번째 법칙이 발표되었다. 마치 17세기는 과학과 미신이 교차하던 시대다.
*출처=<모리시마 츠네오(森島恒雄) 「마녀사냥」 1970 이와나미 신쇼 p.180>
에피소드2 : 케플러의 죽음과 묘비명
1930년 케플러는 받지 못한 황제부 수학자로서의 급료를 받으려고 프라하로 향하였다.
별자리 법칙에 따라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매우 소침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도중에 있는 여관에서 죽었다. 1630년 향년 59세였다.
일설에는 린츠에서 미지불 채권을 받기 위해 린츠로 향했다. 열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성대한 장례식이 거행된 듯하다.
또 하나의 설은 돈아 없었던 케플러는 여행 도중에 만족한 식사를 취하지 못하여 쇠약사했다고도 한다.
그가 죽은 후 가지고 있던 책을 보고 간신히 케플러라는 것을 알았다고도 한다. 어쩌면 이 설이 성실하고 근엄한 생활을 일관해 온 생활의 고생이 케플러다운 죽음이었는지 모른다.
케플러의 무덤은 전란 중에 파괴되어 소재가 불명한 채로 오늘에 이른다.
죽기 몇 달 전에 케플러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묘비명을 썼다.
「나는 한 때 하늘을 재었지만
지금은 땅의 그림자를 잰다.
내 영혼은 하늘을 떠나지 않았지만
내 몸의 그림자는 여기에 잠든다.」
불행히도 케플러가 죽은 지 몇 년 후에 그의 무덤은 30년 전쟁에서 파괴되었다.(끝)
* 출처=< 수렌드라 비마, 야스하라 카즈미(安原和見) 번역, 『유쾌한 과학연표』 2008 치쿠마 가쿠게이 문고, p.68-69>
* 출처=위키페디아
* 출처=https://www.s-yamaga.jp/nanimono/sonota/kepl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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