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 이야기(1)
== 「케플러의 법칙」 발견으로 천문학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요하네스 케플러
1, 개요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 는 독일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천체의 운동 법칙과 관련된 케플러의 법칙을 옹호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체의 운동에 대한 이론적 해명 측면에서 그는 천체 물리학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수학자, 자연 철학자 및 점성가이다.
2, 출생과 가정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 바일데어 슈타트(현재의 슈투트가르트, 바덴=뷔르템베르크, 독일)에서 하인리히 케플러(Heinrich Kepler)와 카타리나 케플러(Katharina Kepler)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카타리나는 여관 주인의 딸인 카타리나 굴덴만(Katharina Guldenmann)으로 약초로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외할아버지인 세발드 케플러(Sebald Kepler)는 이 도시의 시장이기도 했다.
케플러가 태어났을 때, 케플러 가정의 재정 상황은 기울어지고 가난해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는 돈을 벌기 위해 용병이 되었고, 요하네스가 다섯 살 때 가족과 헤어졌다. (나중에 요하네스가 17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그는 80년 전쟁 중 네덜란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케플러는 네 살 때 천연두에 걸려 눈이 멀고 불구가 되었다. 6살 때 그는 1577년의 대혜성을 목격했다(요하네스는 나중에 그것을 "어머니와 함께 높은 곳에서 보았다"고 묘사했다.)
케플러 가문의 신앙은 개신교였지만 당시 신성로마제국에서 종교적 갈등이 커지고 있던 것이 고난의 원인 중 하나였다.(위키페디아)
3, 결혼과 가정
1597년 4월, 케플러는 부유한 방앗간 주인의 딸인데 7살인 레지나라는 딸이 달린 바바라와 결혼하였다. 그와 바바라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둘 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케플러는 레지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내는 병에 걸리기 쉽고, 월급이 낮은 케플러를 경멸한다.
케플러는 결혼 당시의 여성을 평가하는 '이론'을 생각해 냈고, 그 이론에 따라 점수가 가장 높은 여성(바바라)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실은 가장 낮은 여자였다.
그런데 케플러에게 불행이 닥쳤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프라하에서 천연두가 발병하여 그는 아내와 장남을 잃었다(1610년). 또한 왕이 바뀌었기 때문에 왕에 소속된 수학자로서의 급여는 앞으로 만족스럽게 지급되지 않았다.
1612년 린츠의 수학감독관으로 부임했을 때 이 마을에서 수잔나 로이팅거라는 여성과 재혼했다. 이 때를 가리켜 가장 낮은 지위의 여성과 결혼한 설도 있다. 케플러는 이 여인과의 사이에서 6명의 자녀를 두었다.(어떤 사람들은 8명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 3명은 어려서 죽었다)(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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