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성과학자
28, 큐리 부인 이야기 4-1
4, 라듐 원소와 노벨상 수상
라듐의 푸른 빛
폴로니움(polonium=원자번호 84의 원소, 원소기호 Po)은 화학적 성질이 비스머스(bismuth=원자번호 83의 원소, 원소기호 Bi)에 가깝고, 광석 중에서 비스머스 같은 물질을 찾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이르렀다. 그러나 라듐(radium=원자번호 88의 원 소, 원소기호 Ra)발견은 한 줄기는 아니었다. 화학적 성질이 가까운 원소에 바리움(barium=원자번호 56의 원소, 원소기호는 Ba)이 있는데, 광석 중에는 바리움과 라듐 두 가지가 함유되어있었다. 1898년 단계에서 부처는 라듐의 흔적을 잡았으나 순수한 상태에서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열악한 환경과 과혹한 작업, 핍박한 가계를 매우기 위하여 교직에 바쁘기 때문에 부처의 건강 상태까지 악영향이 미쳐서 피엘은 정제를 일시 중단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는 조금씩 착착 진행하는 작업에 희망이 있었다. 1톤의 피츠블렌드에서 분리 정제된 라듐 염화물은 1/10 그램밖에 되지 않았으나 방사선 원소는 착착 농축되어 이윽고 시험관이나 증발 접시에서 발광이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는 이것을 <요정과 같은 빛>이라고 형용하고 있다.
라듐의 푸른 빛
1902년 3월에는 농축에 효과적인 시약을 발견하여 이것을 써서 정제한 시료의 스펙트럼(spectrum)이 라듐 고유의 것임을 밝혀내어 부처는 순수 라듐 염의 푸른빛에 감동을 느꼈다. 부처는 우위의 순수한 라듐 염을 얻기까지에 약 3년 반이라는 시간과 11톤의 피츠블렌드를 정제 처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 불행한 일이 큐리 부처에게 겹쳤다. 1902년 5월 마리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가는 도중에서 부고를 받았다. 마리는 불효한 자신을 책하였다. 만년의 아버지는 마리가 보내주는 마리의 논문을 즐거이 읽곤 하였다. 특히 3월에 라듐 정제 성공의 편지에는 매우 기뻐하여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피엘의 친구들은 피엘을 아카데미회원 후보로 추천하였으나 7월 선거에 낙선하였다. 그러나 이런 활동도 영예스러운 것은 아니고 연구를 위한 것으로 거꾸로 레지온 도누르훈장( légion d'honneur=명예의 군단 국가훈장) 수훈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연구 활동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거절하고 있다.
큐리 부처는 연구하는 일에 돌아왔으나 몸이 상하여 피엘은 류마치스가 악화되어 자주 발작하였고 마리는 신경쇠약으로 몽유병 증상을 일으키곤 하였다. 이듬해 1903년에는 대망의 둘째 아기를 유산하여 마리는 슬픔에 빠졌다.
이처럼 곤경 속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를 부처는 한 결 같이 학회에 알리고 1899년에서 1904년에 걸쳐서 32점의 연구발표를 하였다.
그것은 과학자들에게 방사능이나 방사성원소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검토하게 했다. 방사성원소의 추구는 몇 개의 동위체(Isotpe) 발견에 이어지고 다시 윌리암 람세이(William Ramsay, 1852년10월2일~1916년7월23일=스코틀랜드 화학자, 1904년 노벨화학상수상)와 프레데릭 소디(Frederick Soddy, 1877년9월2일~1956년9월22일=영국 화학자, 1921년 노벨화학상 수상)에 의하여 <라듐 붕괴에 의한 헬리움(helium=원자번호 2, 원소기호 He의 원소) 발생>을 확인하고, 어네스트 라자포드(Ernest Rutherford, 1st Baron Rutherford of Nelson (라자포드남작)、1871년8월30일~1937년10월19일=뉴질랜드 물리학자, 화학자)와 프레데릭 소디의 원소변환설 등도 내놓게 되었다. 이것들은 당시 <원소는 불변>이라고 믿었던 개념의 변혁을 촉진시키고 원자물리학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다시 1900년에 독일의 의학자 바루쿠호프(Varukuhoffu) 와 기셀( Giesel)이 <방사선이 생물조직에 영향을 끼친다.>는 보고가 있었다. 서둘러서 피엘은 라듐을 팔에 붙이고 화상과 같은 손상을 확인하였다. 의학교수들과 협동 연구한 결과 변질한 세포를 파괴하는 효과가 확인되어 피부질환이나 악성종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이것은 후에 <큐리요법>이라고 불리었다. 이리하여 라듐은 <묘약>이라 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무렵 부처는 유해한 방사선피폭의 영향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였고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에 방호대책을 쓰지 않았다. 부처는 이 연구가 건강에 대하여 어느 만큼의 위험을 치르고 있는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신원소 라듐은 학문의 대상에만 그치지 않고 산업분야에서도 유용성이 차차 밝혀졌다. 큐리 부처는 라듐 정제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지 않고 공개하였다. 이것은 드문 일인데 그런 때문에 다른 과학자들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라듐을 정제하여 사용할 수가 있었다. 프랑스의 실업가 아르메 드 릴(Emile Armet De Lisle)은 라듐의 공업적 생산에 당하여 부처의 협력을 받들어 의료분야에 제공하였다. 라듐은 세계에서 가장 고가의 물질이 되었다.
출처: https://naganchun.tistory.com/1631 [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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