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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작 뉴턴(1642~1727) 이야기(8/13)

간천(澗泉) naganchun 2024. 4. 3. 03:15

2, 아이작 뉴턴(1642~1727) 이야기(8/13)

==떨어지는 사과에서 힌트를 얻어 근대과학의 기초를 구축했다.==

 

 

7, 라이벌과의 분쟁

 

 

1) 라이프니츠와의 분쟁

 

이 무렵 미적분의 선취권을 둘러싼 대륙의 라이프니츠(독일어 ;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라이프니츠는 1684년에 미분적분법을 발표하였다. 1687년에는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발표되었다.

 

뉴턴이 미분적분을 개발한 것은 <경이의 해>1666년 무렵인데 이 시점에서는 공표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뉴턴은 라이프니츠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미분적분법을 훔쳤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미 대물이 된 뉴턴은 표면에는 등장하지 않고 제자들이 라이프니츠를 공격했다. 라이프니츠도지지 않으려고 대항했다.

그런데 이 불모의 싸움도 뉴턴의 그 완강함으로 승리한다.

1716년에 논쟁 상대인 라이프니츠가 사망하였다.

현재에는 미분적분의 기호는 라이프니츠가 생각한 기호가 쓰기 쉬우므로 그 기호가 쓰이고 있다.

 

2) 프램스티드와의 분쟁

달 관측 데이터를 둘러싼 영국의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 1646-1718, 영국 천문학자)와의 분쟁이 있었다.

뉴턴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 1646-1719, 영국 천문학자)에게 요구한 것은 달 관측 데이터이다. 뉴턴은 자신의 달의 이론을 완전한 것으로 하고 싶었다. 뉴턴은 최초에는 정중하게 요구했는데 조금 더 관측정도를 올려서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공표하고 싶은 플램스티드는 이것을 거부한다.

1707년 혹 1712년에 뉴턴은 차차 고압적이 되어 최후에는 그 정치력으로 플램스티드의 관측데이터를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 영국의 천문학자, 기상학자, 물리학자, 수학자)에 의하여 억지로 출판( 『영국천문지』 )시켰다.

 

69세인 왕립협회 회장 뉴턴과 65세인 왕실천문대대장 플램스티드가 직접 대치하여 분노한 뉴턴이 플램스티드에게 모욕적인 욕을 퍼붓는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천문지는 핼리의 데이터도 덧붙여져 있고 전체로서는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1719년 플램스티드는 실의에 빠진 채로 사망했다.

여기서도 라이벌이 사망으로 뉴턴이 승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