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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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태생의 과학자. 위대한 사람을 생각할 때 그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녀는 나중에 노벨 화학상과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두 개의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재능이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폴란드 대학에 입학이 인정되지 않아서 언니를 따라서 프랑스에서 유학해야 했다. 마리의 가족은 폴란드 민족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몰락되었고, 그녀는 가난을 견뎌내면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 졸업 후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 '마구간 같은 판잣집과 감자 창고를 합쳐 둘로 나눈 것 같은 작은 집에서' 실험을 반복하여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 으로 대표될만한 위대한 발견을 했고, 방사능이나 방사선 등도 마리가 발견하여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 성과는 아직도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시 무시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요스타 미타크 레플러(Joosta = Mittak Leffler)라는 사람의 노력에 의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두 종류의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업적은 너무 커서 원자 번호 96을 가진 물질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큐륨"으로 명명되었으며 그녀의 이름을 딴 역이나 연구소 심지어 대학까지도 존재할 정도이다.
마리 퀴리의 놀라운 점은 그녀의 장녀 이렌 줄리오 퀴리(Irene Joliot-Curie、1897년 9월 12일 - 1956년 3월 17일)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일 것이다(다시 그녀의 둘째 딸 에브 퀴리(프: Ève Denise Curie Labouisse、1904년 12월 6일 - 2007년 10월 22dlf)의 남편 라뷔스(Henry Richardson Labouisse, Jr) 가 사무국장이었을 때 유니세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마리 퀴리는 위대한 공적을 남긴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f:id:myworldhistoryblog:20191110150950j: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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