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이름 짓기 유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만물에 특유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어떻게 해서 명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이 주는 느낌을 생각하다보면 흥미로울 때가 많다. 가령 ‘예뿐이’라 했을 때와 ‘개똥이’라 했을 때의 느낌은 정반대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이름은 아름답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자기 자신에게나 남들로 하여금 호감을 사게 하는 이름이라야만 좋을 것이다. 물론 부르기 좋은 이름, 부드러운 느낌이드는 소리를 가진 이름이 좋을 것이다.
춘추좌씨전 환공 6년 조에 보면 이름 짓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태어날 때의 특징을 보고 짓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덕을 생각하여 짓는 것을 의(義)라 하고, 비슷한 것을 본보아 짓는 것을 상(象)이라 하며, 만물의 이름에서 따는 것을 가(假)라 하고, 어버이나 친족과의 관계를 연관 지어 짓는 것을 유(類)라 한다는 말이 있다.
옛 성인으로 공자는 이름을 구(丘)라 하고, 노자는 이름을 이(耳)라 했다. 공자는 태어날 때 머리 모양이 우툴두툴하여 산과 비슷하였기 때문에 언덕이라는 뜻의 구(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는 좌전에서 말하는 신(信)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혹은 니산(尼山)이라는 산의 산신에게 기도하여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에 구라고 했다고도 한다. 이는 좌전의 가(假)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이에 대하여 노자는 태어났을 때 매우 귀가 특징이 있어서 귀라는 뜻의 이(耳)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이는 좌전의 신(信)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자(字)는 이름과 관련이 있는 글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니까, 공자는 자를 중니(仲尼)라 했다. 공자가 태어난 고장 가까운 곳에 니산(尼山)이라는 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이(耳)라 한 노자는 자를 담(聃)이라고 붙였다. 담(聃)이란 귀가 늘어져서 윤곽이 확실하지 않은 귀의 모양을 말한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연합함대사령관으로 태평양 해상에서 전사하여 당시 일본인들에게 영웅시되었던 해군제독에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오십 육 세에 태어났다 하여 ‘오십 육’(이소로쿠)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이는 좌전의 유(類)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우리말로 이름을 지어주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예를 들면 고아라, 전새로미, 송누리, 장초롱, 우리나, 김은빛 김푸른, 김보름, 변예술, 안소라, 한아름, 한바른, 한송이, 한구슬, 김진달래 등의 이름들은 매우 부르기도 좋으려니와 발음이 부드럽고 밝은 느낌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은 물론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도 매우 따스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순 우리말로 이름을 지었었는데 신라 경덕왕 이후에 한자를 빌려 적었기 때문에 한자음 이름이 되었다. 신라의 건국 시조 ‘박혁거세’는 ‘밝은 세상“이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음 표기법으로 변한 것이다. 이차돈(異次頓), 거칠부(居柒夫) 같은 이름도 순 우리말을 한자음으로 적은 것이다.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게 되어 성명 삼 자(姓名三字)의 형태가 고정되었는데, 성 한 자에 이름이 두 자이거나, 성이 두자인 경우에는 이름자를 한 자로 하는 것이 전통적인 작명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순 우리말로 짓는 바람에 한 없이 길어지는 예가 있다. 듣기로는 ‘박 차고나온놈이새미나’라는 이름이 버젓이 호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하니, 이름붙이는 전통은 무너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적에 등재 여부는 모르나 "황 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 "박 초롱초롱빛나리" "육 백만불" 등의 이름도 있다고 하니 사람의 이름에도 재미가 있다고 할 밖에 세상이 많이 달라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특히 진보적인 여성 활동가들 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자는 운동이 일어나서 ‘김신명숙’ 곧 아버지의 성은 김씨, 어머니의 성은 신씨, 이름은 ‘명숙’ 이런 유형의 이름이 통용되고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전통이란 것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듯하여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싶기도 하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人死留名)”[(구양수(歐陽脩)의 왕언장화상기(王彦章畵像記)]라는 말이 있다. 이는 표범은 아름다운 가죽을 몸에 지니고 있으므로 죽으면 그 가죽을 남기게 되고, 사람은 살아서 좋은 일, 훌륭한 일을 하고 위업을 이루어 아름다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의 말이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좋은 이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에 걸맞게 훌륭한 업적을 남겨서 후세에 이름이 남을 수 있게 하는 것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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