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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기타/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16) AI 스피커에 대한 예의

간천(澗泉) naganchun 2020. 2. 7. 04:15

2020 ‘내가 쓰고 싶은 특집반지의 제왕을 소환하다

 

(16) AI 스피커에 대한 예의

 

 

몇 일 전 택시를 타고 이동 하던 중의 일이다.

택시 기사님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내가 차에 올라타고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님은 거치대에 설치된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화면에다 대고

지니! 000로 가!” 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분 스마트폰에 내장된 AI스피커가 지니인가 보다.

 

AI 스피커를 활용하면 손을 이용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음성으로 노래를 재생하거나, 통신망에 연결된 가전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지니! 찌니!! 000로 가!”

 

마치 주인이 머슴을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강한 어조였다. ‘내가 지시 내리니 너는 어쩔 수 없이 내 명령을 따라라하는 듯이 껄렁껄렁하고 거들먹거리는 뉘앙스였다. 무례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기계지만 함부로 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니는 답이 없다. 화면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주인인 택시 기사님은 재차 찌니(큰 목소리로 다그치듯이) 00로 가라니까!’ 라고 한다. 말을 탄 기사가 말이 달리지 않자 발을 차면서 자꾸만 채찍질을 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스마트폰 화면은 그대로이다. 내가 승차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니가 잘 못 알아 듣는 모양이라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도 응답이 없자 자기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는 멍청한 기계라도 되는 듯한 취급을 한다.

 

주인은 뒤를 돌아 나를 한 번 쓱 쳐다보고 겸연쩍어 하더니, 거치대에 고정된 스마트폰 화면을 만지작거리고 톡톡 두드려 본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지니야, 00로 가자라고 한다.

화면이 바뀐다. 도로 화면이 움직인다.

 

아마도 지니는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지시하는 투가 조금 하대하고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지니도 그랬던 모양이다.

택시 기사님은 내가 이렇게 스마트기기를 잘 다루는 앞서가는 사람이다라고 우쭐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나는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이다라고 생색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AI 스피커는 그런 인간에 대해선 경고를 하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지시를 따르지 않고 모른 척하고 움직여 주지 않은 것이다.

 

주인은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그 체면이 구겨지기 전에, 현명하게 상대방(AI 스피커)을 존중하는 예의를 갖추고 대하자 AI스피커는 그제야 순응을 해주었다.

 

아하! 현명한 지니(AI 스피커).

IT 기술이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인간을 길들이는 구나!! (움찔)

 

입력어가 거의 정해져 있겠지만 소리나 톤까지 인식하는 것 같다. 그 명령어를 제시하는 인간의 내면까지 감정까지 성정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한편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훤히 마음속을 꿰뚫고 있으니까.

 

스마트폰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음성인식 기술과 클라우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단순하게 소리를 전달하는 도구에서 생각하고 관리하는 AI 스피커로 진화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마법사 간달프가 "멜론"이라고 답하자 문이 열린다.

 

문을 여는 주문은 바로 저 아치에 새겨져 있었던 거요. 저 글은 친구라고 말을 하고 안에 들어가라로 해석되어야 했소. 그래서 친구라고 했더니 문이 열린 거요. 아주 간단한 일이었소. <반지의 제왕 2p. 147>

 

오죽하면 거대한 암벽문을 열기 위해서 제시된 통과 암호도 요정어로 친구란 의미의 '멜론' 이겠는가. 서로 다정하게 예를 갖추자는 의미 아니겠는가?

 

이 세상 만물이 모두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기술도 진보했으면 좋겠다. 선한 기술도 악하게 사용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지만, 그런 것을 제지하고 뛰어넘는 기술이 거듭 나왔으면 좋겠다. 악한 기술은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선하게 다정하게 겸손하게 모두에게 이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