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相思花)의 추억
상사화가 피는 계절이 되었다. 이때가 되면 상사화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군에 있을 때 늑막 유착으로 온양온천 지대에 있는 정양병원에서 한 가을 요양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병원은 철조망으로 둘러치지도 않고 개방된 시설이었다. 일요일이면 요양 중인 병사들이 천렵을 한다고 양동이를 가지고 들로 나갔었다. 논밭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비롯하여 피라미 같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병실에 돌아와 조려 먹곤 한 일이 있었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물결을 치고 있는데 논두렁에는 들백합 같은 자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 꽃 이름은 꽃무릇이라고 했다. 논밭의 황금 벼이삭을 둘러친 듯이 자홍색 꽃무릇이 테두리를 둘러 피어있어서 장관이었다.
내 고향에서는 보지 못한 꽃이었다. 그냥 무릇이라고 해서 일제 강점기 때에 식량이 부족하여 밭에서 무릇을 캐어다가 엿처럼 고아서 바다의 넘패를 섞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무릇은 하얀 꽃이 자그맣게 피는 식물이다.
그런데 이 꽃무릇은 초여름에 잎이 시들어 말라버리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초가을까지 갑자기 4, 50센티의 꽃대가 솟아 올라와서 가지도 잎도 없이 꽃대 하나에 대여섯 개의 꽃이 방사형으로 피는 구근류의 꽃이다.
세월이 가고 그 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30여 년 전에 내가 일본 이바라기현 미토(水戶)에서 파견 근무를 할 때에 민단 역원이 안내로 한국식 무덤을 본 일이 있다.
물론 일본에서는 거의가 화장을 하여 매장하는 일이 없지만 특수한 경우 매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그것은 일본이 근대화되기 전에 일본을 260여 년 간 통치한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장군을 배출하는 고상케(御三家)의 하나인 미토가(水戶家)의 선조의 가족 묘지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실권을 놓은 지 100여년이 지나서 수십 기의 무덤은 우리나라의 아총과 비슷하고 떼가 벗어져 초라하고 퇴락하여 볼품이 없지만 묘지 주변에 핀 꽃무릇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묘지 둘레에 폭넓게 밀생하여 자홍색으로 핀 광경이 볼만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묘지에 많이 심는다고 하고 꽃 이름도 피안화(彼岸花/히간바나)라 한다고 했다.
그 이름의 유래는 춘분과 추분 일을 끼고 전후 일주간을 피안이라고 하는데 그 꽃은 이 기간에 피기 때문에 피안화라 한다고 한다.
피안이란 불가의 용어로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고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을 지칭한 말로서 쉽게 말하자면 ‘저승꽃’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리 좋아하는 꽃이 아니고 묘지에나 심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잎과 꽃은 서로 볼 수가 없어서 그리워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상사화(相思花)라 한다.
수년 전에 선조의 무덤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되어서 이 상사화를 생각하게 되어 제단 주변에 상사화를 심었는데 벌초가 끝난 후 묘지에 들렀더니 곱게 피었었다.
앞에 간 옛 사람 보지 못하고 (前不見古人)
뒤에는 오는 사람 보지 못하네 (後不見來者)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다가 (念天地悠悠)
혼자 서러워 눈물 흘리네 (獨愴然而涕下)
문득 이런 진자앙(陳子昻)의 시가 생각나서 나 또한 처연히 머리 숙였다.
잎은 잎대로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꽃대로 잎을 그리워하듯 이승에 피어서 일찍이 돌아가신 조상님을 추모하는 뜻으로 길이길이 곱게 퍼지기를 염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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