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꽃을 처음 보았던 날을 추억하며
고구마꽃
최근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 하고, 사실을 왜곡한 역사 교과서를 보급하고, 한류의 일본 TV 방영을 방해하는 등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비열한 망동을 저질러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66주년이 되는 오늘 2011년 8월 15일을 맞으며 어린이로서 겪은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경험의 일단을 회고해보며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1학년에 입학하기 전해인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매달 8일을 전의를 고취시키는 날로 정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였다. 우선 신사참배이다. 당시 세화(면사무소와 학교 소재지)에는 신사가 있었는데 이 날은 전교생이 신사에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이때는 학생뿐만 아니라 마을 청년(연성소/練成所), 면사무소 직원, 주재소 경찰관, 특히 우도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 해군들이 군복을 입고 도열하여 결전 의지를 다졌다. 이것을 다이쇼호다이비(大昭奉戴日) 라고 했다.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루즈벨트 등을 ‘자찌르’ ‘루스베루또’라고 하면서 악마 같은 모습으로 묘사하며 적개심을 고조시켰던 연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학교생활에서 인상적인 것은 한겨울에도 6개 마을의 동네별로 학생들을 운동장 가 쪽으로 도열시켜놓고 발 검사와 발톱 검사를 실시하고, 양말과 신발을 벗기고 맨발로 운동장을 뛰게 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동상이 걸려서 김치 국물을 데워서 담갔던 기억이 있다.
소풍은 원족(遠足)이라고 하였는데, 먼 거리까지 걷도록 하였다. 국민학교 저학년에게도 10㎞ 정도를 걷게 하는 등 체력에 무리할 정도의 고통을 주었다.
3학년이 되자 ‘각반’이라고 하여 무릎 밑 정강이에 손바닥만 한 넓이에 길이 1미터 반 정도의 천으로 만든 띠로 다리를 감게 했는데, 이것을 누가 빨리, 그리고 보기 좋게 매느냐 하는 훈련을 시키고 시험도 치러 기능을 연마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반을 차고 분열식을 연습하는 등 전투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했다.
이때부터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에게도 공출이나 공납을 강요하였다. 봄에는 들에 나가 고사리를 캐서 바쳐야 했다. 여름에는 야생초인 진, 모시, 삼 등을 캐서 바치게 했다. 삼은 로프를 만드는 데 소용된다고 했다. 진은 껍질을 두드려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드는 데 소용되었다. 그리고 송진, 동백열매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정량을 모아서 바치게 했다. 그런데 개인에게 배정된 양은 어린 학생들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학생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족이 모두 모아서도 배당량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4학년이 되던 1945년에는 학교 운동장 주위를 모두 개간하여 쭉 둘러가며 해바라기를 심었다. 해바라기 씨를 기름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동네에는 일본군이 들어와 진을 치고 학교는 모두 일본군 야전병원으로 징발 되어버려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고 동네별로 사가를 간이학교로 정하여 거기로 출석하였다. 한동리 학생들은 평대리 학생들과 함께 B 군 네 집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한동리 같은 반 학생인 우리들 8명은 한동리 작음이라는 곳에 있는 K 군 네 밭 100여 평을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었었다. 오전에는 간이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근로봉사라 하여 동네 청소를 하기도 하고 때때로 이 개간한 밭에 나가서 일하였다. 더운 여름철이었지만 개간지의 작물을 손보면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하다 집에 돌아가곤 하였다.
8월 어느 날 고구마 밭에 가보니 메꽃 같은 연보라색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것은 고구마 줄기에 핀 꽃이었다. 동네 할아버지께 고구마 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여쭈었더니 “고구마 꽃이 피면 큰일이 날 조짐이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런데 얼마 없어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항복하는 방송을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해방된 것이라 하였다.
그때야 우리의 참 나라를 찾았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들도 강제된 작업과 공출에서 해방되었다.
이웃이 심술궂은 짓을 지나치게 하면 이사를 하면 좋을 것이다. 이사를 하지도 못할 처지라면 심술궂은 짓을 더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하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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