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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치료로 실패하는 일이 있는가?

간천(澗泉) naganchun 2022. 10. 24. 03:16

항암제 치료로 실패하는 일이 있는가?

 

 

<항암 치료제로 실패하는 일이 있나?

 

수술의 경우 예정한 대로의 수술을 지체 없이 할 수 있어서 병이 나아서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으면 성공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실패일지 모른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그 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실패인가? 반대로 수술에서 미스가 있었지만 환자는 건강해진 경우는 성공인가? 이처럼 생각하면 성공이나 실패의 경계가 애매하다.

 

 

경계는 애매하다

 

수술이라면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여 경과도 비교적 확실하지만 항암치료제라면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더 애매하다. 항암 치료를 행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인데 조기암의 수술 후에 행하는 항암제치료라면 신체 안에 퍼져있는지 모를 세포를 근절시키고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경우 재발한다면 <실패> 재발하지 않고 일생을 보낸다면 <성공>인지 모르지만 성공했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일생을 마쳐서일까. 혹시 재발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이 항암 치료제를 받은 덕분인지 모르므로 역시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원격전이가 있는 진행 암의 경우 < 좋은 상태로 장수하기>를 목적으로 항암제 치료가 행해지는데 그 성공과 실패는 다시 어려워진다. 항암제가 잘 들어서 1년간 좋은 상태를 지탱한 경우 의사는 <잘 되었다.>고 생각할 것인가. 환자입장에서 보면 단지 1년으로 병이 진행해버린다면 <실패>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환자가 <받아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암 치료제로 실패하는 일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아서 먼저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음을 재인식하면서 환자가 어떻게 느낄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항암제를 받아서 좋았다.>고 생각한다면 <성공>, <이런 항암제를 받을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실패>인지 모른다. 암을 영으로 하는 것이 어려운 진행 암으로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거의가 <실패>가 되고 말므로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임상시험에서 항암제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생존기간><병이 진행이 확인되기까지의 기간(無増悪生存期間)> 등이 지표로 쓰이고 있어서 이들 지표로 표준 치료를 상회하는 결과가 얻어지는 신치료가 있다면 새로운 표준 치료가 된다.

현재의 표준 치료는 이제까지의 임상시험의 쌓인 가운데서 선발된 것으로 이전에 비하면 병이 진행하기까지의 기간도 길어지고 목숨도 연장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의료자는 <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표준 치료를 권할 터인데 실제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이렇게 훌륭한 치료를 받아서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1년밖에 듣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결국 치료가 안 된 것이라면 해보아도 같다.> <괴로움뿐이라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객관적으로는 <좋은 상태로 장수한다.>로 이어진다고 해도 환자자신이 그것을 실감할 수 없다면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

 

항암 치료제에서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환자와 의사와의 회화일는지 모른다. <이것이 표준 치료로 최선의 치료이므로 이 항암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무슨 때문에 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치료를 받는 것보다 <많은 선택지가 있고 항암제를 쓰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이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 항암제를 써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고 설명을 받고 스스로도 납득하여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같은 치료라 하더라도 성공률이 오른다고 생각한다.

<사는 보람으로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던 여행을 하고 싶다.><사랑하나는 개와 함께 아무 일 없는 매일을 지내고 싶다.> 등 환자의 소망은 여러 가지이다.

항암제 치료에 의하여 그 소망이 방해를 받는 일 없이 아마도 뒷받침이 되도록 한 셈인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소원을 공유한 위에 항암제 치료를 행하고 효과가 얻어져서 환자로부터 일이나 여행이나 애견이나 즐거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이 치료를 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환자 자신이 치료에 의하여 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알기 위하여서라도 치료중의 대화자는 빠질 수 없다.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물로 의료에는 한계가 있고 항암제가 생각한 것처럼은 듣지 않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그런 때에도 잘 대화하여 계속하여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면 좋다고 생각한다. 항암제라는 도구가 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부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운명을 나누는 것처럼 생각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자기답게 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의사와 함께 생각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의 치료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꽤 정하기 어려운 일이고 원래 어느 쪽인지를 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중에서 때로 거친 파도에 거릴 경우도 있을 것이고 무엇인지를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자기 스스로의 중요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아갈 것이 인생이고 성공인지 실패인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효과를 얻지 못한 여성은 <실패>였는가?

 

나의 환자로서 온화케어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진행유암인 60대 여성이 있다. 사는 곳은 먼 곳인데 내가 있는 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통원하고 있었다. 표준적인 항암제치료를 행하였는데 거의 효과가 얻어지지 않고 병은 진행해갔다.

내가 의학적으로 공헌된 것은 그다지 없었던 셈인데 그래도 그녀는 <선생님과 만나서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말해주었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생각을 잘 듣고 잡담을 하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항암제치료나 완화케어를 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병동에서 만나면 기쁜 듯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어서 이제부터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녀에게 간 항암제치료자체는 실패였는지 모르지만 치료나 완화케어에 당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생각이나 꿈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간 것은 그녀로서도 나로서도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객관적으로 정하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지 어떤지가 중요하다.

나의 <정한 세리프>가 있다면

TV드라마<닥터-X>의 와과의 다이몽 미치코(大門未知子)처럼 <나 실패하지 않으므로>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종양내과의 다카노도시미(高野利実)의 정한 세리프가 있다고 하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정하지 못하지만 나 가장 중요한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가될 것인가. 실제로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드라마가 될 이도 없지만 이번 질문에 대한 회담으로서 적어보았다.*

 

필자=다카노도시미(高野 利実)-

암연구소 아리아케(有明)병원 원장 보좌. 유선내과부장.

1972년 도쿄생. 98년 도쿄대학의학부 졸업. 종양내과의를 지망하고 동대학부속병원이나 국립아센터 중앙병원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5년 도쿄 공제병원에 종양내과를 개설. 2020년 암연구소 아리아케병원에 유선내과부장으로 부임. 현재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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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news.yahoo.co.jp ›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