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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키호 표류기

간천(澗泉) naganchun 2021. 9. 16. 09:45

 

 

콘티키호 표류기

 

 

콘티키호(Kon-Tiki는 노르웨이 인류학자 도어 헤이에르달(1914-2002)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 뗏목배로서 페루의 가야오항에서 출발하여 남태평양 투아모스 섬까지 4,300마일(8000킬로)를 항행하였다.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 사는 폴리네시아인의 기원에 대해서 남미의 잉카문명과 폴리네시아문명과의 상사점이 많은 데서 폴리네시아인의 조상이 남미에서 바다를 건너서 도래한 미국 인디언이라는 설이 있었다.

 

콘티키호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 등은 이 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이 그린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바르자(가벼운 뗏목용 목재의 나무)나 소나무, , 망글로브, 마 등 고대에도 입수하기 쉬운 재료만을 가지고 한 척의 뗏목배를 만들었다. 도면에 따라 충실히 제작되었으나 항해의 끝 무렵까지 기능을 알 수 없는 부품도 있었다고 헤에르달은 말한다.

그러나 식료는 군사용 레이션을 실었고 항법기기나 보트 등 현대(1940년대) 것도 사용 하고 있었다. 또 아마추어무선에 의하여 노르웨이를 포함한 세계 각국과의 교신을 행하였다.

아무런 동력을 가지지 않은 뗏목배가 바람과 해류에 흘리어서 소사이어티제도Society Islands등의 남태평양 섬들에 표착 가능성을 실증하였다. 폴리네시아의 조상이 미국 인디언일 가능성을 증명하였다. 배 이름은 잉카제국의 태양신 비라고차(Con-Tici Viracocha)의 별명에서 명명되었다.

1947 4 28일에 페루의 가야오항에서부터 표류하기 시작하여 콘티기호는 훔볼트해류 (Humboldt Current를 타고 헤이에르달 등의 예상한 대로 서진하여 102일 후에 1947 8 7일에 페누아 투아모스제도(Fenua Tuamous)의 라로이아환초에 좌초하였다. 항해 거리는 4,300마일(8천 킬로 정도)에 이른다.

 

수수께끼의 거석문화

 

남태평양에 점재하는 섬들에는 특이한 돌 문화가 남겨져있다. 이스타섬의 모아이는 수수께끼의 거석상이다. 섬에는 1천체의 석상이 있고 그 모두는 섬의 중앙을 향하고 있다. 모아이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고 어째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또 다시 서쪽으로 가면 난마도레라는 불가사의한 해상도시의 유적이 있다. 이들은 73 인구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시 야프도(Yap Island)에는 돌로 된 거대한 화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이 돌 화폐는 섬 이르는 곳마다 1만 수천 개나 있고 큰 것으로는 직경이 3미터, 무게가 5톤이 넘는 것이 있다.

도대체 이들 불가사의한 돌 문화는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모든 문명은 갑자기 무에서 생기는 일은 없다.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아서 그 바탕이 된 원조 문명이 있는 것이다.

이런 때문에 원래 연륙이었고 일찍이 바다에 잠긴 거대대륙의 잔재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장하고도 커다란 실험

      

남미의 잉카문명과 폴리네시아문명 사이에 유사점이 많은 데 눈치를 챈 노르웨이의 민속학자 도르 헤이에르달은 폴리네시아인의 선조가 남미 대륙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 생각하면 태평양의 섬들의 특이한 돌 문화의 근원을 남미의 잉카문명인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무서운 위험을 무릅쓰고 수 천 킬로라는 광대한 태평양을 횡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족한 항해기술도 없고 보잘것없는 배로 바람과 해류에 흘려서 폴리네시아인은 어떻게 해서 태평양을 건널 수가 있었는가? 그는 자신의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장대한 실험을 생각하였다. 조건이나 모든 것을 같게 하여 당시 사람들이 탔던 배에 자신들도 타서 바다를 건너기로 한 것이다.

헤이에르달은 당시 사람들이 탔을 배를 충실히 재현하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자료로서 판명하였다. 바루자, 소나무, , 망글로브. 마 같은 재요를 잉카 당시의 도면을 바탕으로 충실히 짜낸 것이다.

그리하여 한 척의 뗏목배가 만들어졌다. 전장 15미터,  7.5미터 남짓이다. 중앙에는 나무로 짜낸 작은 집이 하나있다. 집의 벽은 대마나무를 짜서 만들었다. 지붕은 바나나 잎을 겹치기로 엮어 만들었다. 이 뗏목배야말로 당시 사람들이 커다란 야심을 품고 대해에 띄워진 배이다. 교신용으로 무선기가 실려 있었는데 현대기술의 산물이라면 이것 하나뿐이었다.

 

목숨을 함께 할 친구들

 

뗏목배에 함께 탈 멤버는 헤이에르달을 포함하여 6명이다. 그들은 지인이기도 하고 탐험가 클럽의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친구도 있었으나 모두가 의기투합하였다.

 

 

콘티키호 승조원

 

헤르만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청년으로 기상관측이니 기계측정에 뛰어났다. 이릭은 화가로서 항해기술에도 뛰어났었다. 구누드와 돌슈타인은 무선 전문가였다 벵구는 단 한 사람의 스웨덴 사람이었으나 체격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노르웨이인 5명 스웨덴인 1명이 우리 콘티키호의 멤버이다.

콘티키호의 멤버들은 좌로부터 3번째가 헤이에르달이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원 호기심이 왕성하고 진리를 구명하는 데는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커다란 야심과 낭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장대한 실험에 대하여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장관은 <그만 둘 것이면 지금이다. 그대들이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할 것이 아닌가.>하고 말하고 한 제독은 뗏목배를 한 번 보고서는 <이것으로는 뗏목배가 너무 작다. 태평양의 큰 파도에 들어 올려지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전문가 여러분도 <바루자는 물을 빨아들여 목적한 4분의 1도 가기 전에 잠겨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항일이 가까워지자 투지보다는 싫은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불안이 그치지 않고 좋지 않은 생각이 마음을 약하게 하였다. 이럴 때 헤이에르달는 자신에게 물었다. 100년 전 쯤 옛날 고대 잉카인은 이 정도의 작은 배로 큰 바다 위를 출항한 것이다. 희망과 커다란 야심만이 그들의 에너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가? 더 자신을 가져라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맹세하였다.

준비는 다 되었다. 이것으로 무사히 해류를 타서 연연히 수 천 킬로 떨어진 섬까지 도착하게 될 것이 아닌가? 참으로 남미의 거석문화는 이리하여 바다를 건넌 것일까?

이리하여 1947 4 28일 장대한 실험은 개시되었다. 뗏목배의 이름은 <콘티키호>이다. 이것은 잉카의 태양신에 준하는 성스러운 명칭이다. 노리는 곳은 아득한 수평선 저 끝 폴리네시아제도이다.

 

익숙하지 않은 뗏목배의 생활

 

서서히 남미대륙이 멀어져 간다. 이윽고 헤이에르달의 예상처럼 콘티키호는 강한 해류에 끌리듯이 북서로 움직였다. 그 속도는 매시 2노트이다. 남반구는 남쪽에서 북서로 불어오는 무역풍이 불고 있다. 그에 호응 하는 듯이 해수는 남극에서 남미대륙을 북상하여 적도부근에서 서쪽으로 회류한다. 이것은 훈볼트해류라 불리우고 있는데 계획으로는 이 해류와 무역풍에 타서 가는 것이다. 예정으로는 순조롭게 가서 3개월로 폴리네시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미군에서 분배 받은 4개월분의 군용식료(통조림)  1톤이나 되는 물이 분산되어 떼목배에 달아두었다.

처음 3일 간은 키잡이와 돛을 올리는 작업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고난의 연속이었다. 멤버 전원에게 마음 쓰이는 것이 3가지가 있었다. 먼저 계획한 대로 해류와 무역풍에 타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2는 바루자는 점점 물을 빨아들인다. 뗏목배가 언제까지 떠있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3은 통나무를 묶은 밧줄이 마찰로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주간 정도 지나자 바다는 고요해지고 마침내 배가 대양에 나온 것 같았다.

거친 파도 속에 키를 잡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얼마간 지나자 배 주위에 여러 가지 고기가 나타났다. 멸치의 대군에 둘러싸인 일이 있었는데

내려다보니 검푸른 바다 속에 은색의 멸치가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양광을 받아서 번쩍번쩍 빛나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광경으로 별다른 우주 공간처럼 보였다.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얼른 바다 속을 스치는가 해서 생각해보니 2미터가 넘는 푸른 상어이기도 하였다. 그런 때 망보기 번을 서던 자가 <상어다> 하고 큰 소리를 지르므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상어는 배 앞에서 흰 배를 내고 그대로 바다 속으로 잠기곤 하였다.

또 바다 속을 천천히 바위와 같은 고기가 흑갈색을 하고 흰 반점이 점점이 박힌 것이 파도 사이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잠기기도 하였다. 마치 암초가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는데 이런 괴물이 바다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 누구나 눈을 동그랗게 하여 보고 있었다. 이 고기는 심평상어(甚平鮫: Whale shark 学名: Rhincodon typus)라 해서 무섭게 보이지만 성격은 매우얌전해서 프랑크톤만 먹는다 한다. 이 상어는 평균 15미터가 되고 15톤이 넘는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배 둘레를 돌고 있으면 두근거려진다. 혹시 성을 낸다면 배는 산산 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7, 8두의 향유고래(抹香鯨)의 무리에 둘러싸인 때도 놀랐다. 그 중에서도 커다란 고래가 배에 바짝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식은땀이 흐른다. 자주 포경선이 부딪쳐서 침몰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격당하였을 때의 일이고 공격만 하지 않으면 고래도 습격해 오지 않는다. 실제 이때에도 물을 뿜으며 배의 둘레를 돌며 헤엄치다가 사라졌다.

 

가까이서 얻을 수 있는 신선한 소득 

 

적도에 가까워지자 커다란 날치가 날아들게 되었다. 밤 석유등을 매달아두면 그 밝은 등을 보고 달려드는 것이다. 요리당번은 아침 일찍 일어나면 배안에 날아든 날치를 모으는 것이 최초의 일이었다. 언제나 10마리 전후 정도가 모였는데 많을 때는 30마리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들은 집 뒤에 있는 플라이팬으로 조리하게 되는데 그렇게도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배 뒤편에 3센티 정도의 따게비(후지쓰보)가 빽빽이 났다. 그 밑에는 해조가 흔들흔들 해수에 씻기고 있다. 따게비를 긁어내어 국에 넣으면 매우 맛이 좋다. 해조는 맛은 없으나 아침 샐러드로 좋았다.

이렇게 신선한 바다의 소득은 기쁜 일이나 프랑크톤 요리도 각별했다. 이것은 특별히 그물을 배가 끌기만하면 많이 잡힌다. 프랑크톤은 몇 백만이라는 작은 새우나 게, 물고기의 알이나 해조 등이었다. 이것이 모이면 미크로 보석처럼 잡히는 장소에 따라 프랑크톤의 종류가 달라서 노랑색, 차색, 녹색 등 층층이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냄새가 약간 나기는 하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맛이 좋았다. 날로 먹으면 케비아 같은 맛이었다. 차색 층은 작은 새우 프랑크톤이 모인 것인지 게 맛이 났다. 영양도 칼로리도 만점으로 단조로운 통조림만의 식사에 좋은 첨가물이 되었다. 표류 중에 식량이 없어서 아사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 프랑크톤 그물만 가지고 있으면 그런 걱정은 없다.

 

생각지 않은 위험

 

출항 이후 1개월이 되려 하고 있다. 콘티키호는 칼라파고스제도의 남서를 오른 쪽으로 벗어나 남적도해류를 타고 마침내 폴리네시아제도에로 진로를 잡기 시작하였다. 이들 전 행정의 3분의 1 정도 온 셈이다. 어느새 최초의 걱정거리는 희박해졌다. 코스는 지금은 예정대로 이고 바루자가 물을 흡수하여 침몰할 것이라 생각한 일도 걱정 없음을 알았다. 바루자 목재는 물을 흡수하는 것은 최초뿐으로 이윽고 수액에 의하여 그 이상 침투하지 않은 것이다.

또 통나무를 잇고 있는 빗줄도 닳아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질겨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재질이 부드러운 바루자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고대 사람들의 지혜는 발랐던 것이다.

항해도 점점 익숙해지자 가동 용골이나 키가 바다 속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작업하기 위하여 바다 속에 잠기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단독으로 헤엄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에리크의 아이디어로 잠수 바구니를 만들기로 하였다. 이 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한 무서운 상어가 와도 안전할 것이다.

바다는 조용할 때는 한 사람씩 이 바구니에 들어가서 물에 잠기어 바다 속을 관찰하기도 하였다. 바다 속에서 쳐다보이는 뗏목배는 환상적이었다. 배에 달라붙어있는 해초가 흔들흔들 흔들리고 때때로 태양 빛을 받아서 번쩍거리고 있다. 수 십 마리의 파리럿피시가 (초대형 물고기에 붙어서 얼굴 주위를 돌며 헤엄치고 선도하는 것 같은 작은 물고기들)떼를 지어 헤엄치고 그 아래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1.5미터 정도의 커다란 만새기가 헤엄쳐 돌고 있는 모습은 웅대하였다. 바다 속에서 쳐다보는 광경은 일생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한번은 거친 바다로 헤르만이 떨어진 일이 있었다. 돌슈타인의 침낭이 바람에 날리어 그것을 붙잡으려 하다가 발이 미끄러진 것이다. <헤르만이 떨어졌다.>는 돌슈타인의 부르짖는 소리에 전원이 달려왔다. 보니까 헤르만은 배를 향하여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으나 점점 거리가 떨어져 갔다. 배는 바람을 타고 점점 나아간다. 멈출 수가 없다. 무서운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때 견딜 수 없었던 구누드가 밧줄을 가지고 거친 바다로 뛰어들었다. 벌떡벌떡하는 시간이 잠시 이어졌으나 간발의 시간을 잡았다. 그 때 두 사람이 배로 기어오른 후 붕붕 떠있던 침낭이 무서운 힘으로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커다란 상어가 한 일일 것이나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는 것은 이런 심경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후로는 전원이 가벼운 행동은 삼가게 되었다.

 

기분 나쁜 환상적인 생물들

 

뗏목배를 타고 파도와 같은 속도로 표류하고 있으면 불가사의한 현상을 보거나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의 일처럼 기괴한 심해어가 뗏목배 위에 올라온 일이 있었다. 길이가 1미터 조금 정도이고 눈은 둥글고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몸은 보라색이고 배는 구릿빛을 하고 있었다. 보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헤르만이 배를 누르자 입에서 2, 3마리의 심해어를 토해내었다. 이것은 매우 진기한 바다뱀이었다.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은 세계에서 이것이 처음이다.

또 바다뱀만이 아니라 오징어까지도 하늘을 날아오는 데는 전원이 놀랐다. 해수를 흠뻑 먹음은 오징어는 그것을 힘껏 토하고 마치 젯트 분사처럼 날아오는 것이다. 날아 들어온 오징어는

양동이에 넣으면 바닷물을 뿜으면서 날뛰었다. 우리들은 이 오징어를 미끼로 하여 참치나 가다랑어를 낚곤 하였다.

밤이 되면 바다는 다른 얼굴을 보인다. 특히 한밤중에는 기괴한 현상이 목격된다. 밤에 키잡이를 혼자 하고 있노라면 깜깜한 파도 사이로 크게 빛나는 두 개의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 자주 보였다.

<큰 오징어다. 틀림없이.> 에리크가 그리 말하였지만 정체는 모른다. 어느 날 밤에는 뗏목배보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 위를 통과한 일이 있다.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커다란 가오리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렇다면 엄청나게 큰 것이다.

야광충이 어두운 바다 속에서 빛나는 모습은 환상적이면서 기분이 나쁘다. 한 번은 검푸른 바다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물체를 발견하였는데 이윽고 그것은 생물체임을 알았다.

야광충 때문에 전체가 흐릿하게 빛나 보여서 대강의 형체는 알았는데 계란 모양이 되기도 하고 삼각형이 되었다가 두 개로 나뉘기도 하여 느리게 헤엄쳤다. 10미터나 되는 괴물로서 물고기인지 고래인지 모른다. 만일 고래라 하면 호흡하기 위하여 부상하기도 할 터인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그 괴물은 날이 새자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육지가

 

항해가 시작되어 3개월이 지날 무렵 군함새 떼가 날아왔다.  2일 후에는 가다랑어새(鰹鳥Sula leucogaster가 날아왔다.

해조의 우는 소리는 용기를 주었다. 육지가 가깝다는 증거이다. 눈을 들어 멀리 보니 수평선 위에 구름이 떠있다. 보통 가는 깃털과 같은 구름은 무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 구름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곧 이 구름 밑에는 육지가 있다는 증거이다. 열대의 태양으로 육지가 뜨거워지면 따뜻한 기류가 올라와서 구름이 된다. 콘티키호는 마침내 최후의 항해를 마치려고 그 구름이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어이! 육지다.> 망을 보던 돌슈타인이 부르짖는다. 보니 수평선 아래 섬 그늘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육지의 실루엣에 가슴이 뛴다. 마침내 폴리네시아제도의 한 쪽에 든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는 엄한 시련이 가로 막아 있는 것이다. 암초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콘티키호는 한 결 같이 암초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해도에 따르면 좌우로 80킬로미터 정도나 있는 무서운 암초가 널려 있는 것이다. 식료, , 약품, 일기류 등 방수 주머니에 담고 전원 구두를 신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하였다.

 

최후의 난관

 

동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콘티키호의 갑판 위에서는 용골을 풀고 키도 풀고 몸을 가볍게 하여 어떻든 암초를 건너려 열심히 노력하였다.

이윽고 아침 안개가 걷히고 야자나무가 무성한 섬의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졌다. 동시에 눈앞에 기분 나쁘게 하는 암초가 보였다.

여기저기에 하얀 파도가 친다. 눈을 밝혀 쳐다보니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바위가 바다 속에서 튀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자 가자.>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돌슈타인이 최후의 무선을 치고 있다. <여기는 콘티키호. 곧 라로이아암초이다. 앞으로 50미터까지 접근하고 있다. 최후가 될는지 모르나 노르웨이 대사관에 잘 전해주기 부탁한다. 안녕히!>

<뗏목배에 달라붙어라.> 에리크의 높은 소리가 들린다.

자 운명의 순간이다. <모두 힘을 내어라.>구누드가 V사인을 나타내는 것이 보인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큰 파도가 몰려온다. 크게 숨을 쉬고 눈을 감는다. 퉁하고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몸이 매우 강력한 힘으로 뗏목배에서 떨어지려는 느낌이 든다. 귓속에서는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몇 초간 고투한 끝에 산 같은 큰 파도가 사라지고 몸은 자유로워졌다. <다시 온다!> 누군가가 소리 지른다.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순간 시야가 녹색으로 변했다. 혼신의 힘으로 뗏목배에 바짝 붙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로부터 몇 번인가 파도는 몰려왔으나 파도는 고개를 넘었는지 차차 그 힘이 약해졌다. 어떻게든지 잘 넘긴 것 같다. 뒤에는 콘티키호의 처참한 모습이 보였다.

돛대는 부러지고 갑판은 너덜너덜하게 되었고 집은 부서졌다. 뗏목배는 몇 차례인가 큰 파도로 암초에서 20미터 정도 안으로 들어가 있다. 다시는 그런 파도는 오지 않았다. 산호초의 안은 외양과는 큭 달라서 풀처럼 고요했다.

 

흘러가는 구름 아래에서 

 

구름처럼 하얀 모래벌판이 모였다. 몽둥이처럼 되어버린 다리로 바다 속을 첨벙첨벙 걸어간다. 움직이지 않은 대지를 걷는 것이 믿기지 않은 기분이다. 마침내 상륙했다.

야자나무 아래에 늘어지게 눕는다. 모두 휴 하고 숨을 쉬고 있다. 아 태양이 눈부시다. 새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기분 좋다. 기분이 최고이다.

벵구드가 말하였다 <마침내 끝났군, 이젠 해류를 타고구름을 쫓는 일은 없겠구나.>

헤르만도 말했다. <힘들었지만 천국 같은 기분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겠군,>

6명이 닿은 곳은 무인도였다. 그렇다 천국의 기분이란 위업을 달성한 후 순간 느끼는 것이다. 헤이에르달과 5명의 젊은이는 하얀 모래판에 누워서 언제까지나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뜨거운 모험은 이제 끝난 것이다.

 

꿈과 낭만과 우정

 

<콘티키호 표류기>는 헤이에르달의 진리에 대한 끈질긴 추구의 기록이었다. 이 실험에 의하여 광대한 태평양에 산재하는 섬들과 잉카문명과의 깊은 연결이 있었음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찬미해 마지않는 것은 그들의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모험에 대하는 정열이었다. 멤버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팀워크가 있었음도 결코 그냥 넘기지 못할 것이다.

광대한 대양으로 배를 타고 나아갈 떼, 불안과 잡념은 사라지고 어떻든 장대한 낭만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콘티키호 표류기 헤이에르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