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4/8)
4,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에든버러대학에서 좋은 결과를 남기지 못하여서 중퇴했는데 부친은 목사를 만들기 위하여 1927년에 케임브리지 그라이스 컬리지에 입학시켰다. 신학이나 고전, 수학을 배우게 했다.
다윈은 목사라면 남는 시간을 많이 박물학에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부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도 윌리암 다윈 폭스(William Darwin Fox, 1805 –1880, 박물학자. 다윈의 사촌) 의 박물학이나 곤충채집에 경도하였다.
폭스의 소개로 성직자이며 박물학자인 존 스티븐슨 헨슬로(John Stevens Henslow, 1796-1861, 영국 식물학자, 지질학자)를 만나서 친한 친구이면서 제자가 되었다.
다윈은 학내에서는 헨슬로가 개설한 정원을 두 사람이 자주 산보하였다.
후에 헨슬로와의 만남에 대하여 자신의 연구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쳤다고 회상했다. 또 같은 성직자로 지층학자인 아담 세지윅(Adam Sedgwick、1785-1873, 영국 지질학자, 지구과학자, 근대지질학의 창시자)한테 배워서 층서학(層序學)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였다.
동시에 당시의 다윈은 신학의 권위인 윌리암 페이리(William Paley, 1743-1805, 주저 『자연신학』 저자임)의 『자연신학(영어판)』을 읽고 디자인론(영어판)(이미 생물은 신이 천지창조의 시점에서 완벽한 형태로 디자인했다는 이론)을 납득하고 믿었다.
자연철학의 목적은 관찰을 기반으로 한 귀납적 추론에 의하여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기술한 존 하셀(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792-1871, 영국 천문학자, 수학자)의 새로운 책이나 알렉산더 훔볼트(독어 ; Friedrich Heinrich Alexander, Freiherr von Humboldt, 1769-1859, 독일의 박물학자 탐험가, 지리학자)의 과학적 탐험여행의 책을 읽었다. 그들의 <불타는 열의에> 자극되어서 열대에서 박물학을 배우기 위하여 졸업 후 동배들과 테네리페(Tenerife)에 여행할 것을 계획해서 그 준비로서 아담 세지윅(Adam edgwick、
1785-1873, 영국 지질학자 지구과학자, 근대지질학 창시자)의 웰스(Welsh)에서의 지층조사에 가담했다. 또 비글호에서 박물학자로서 임무를 다할 준비도 하였다.
이 시대에는 음악이나 수렵(단 후자는 후에 잔혹하다해서 그만두기로 했다.)을 취미로 하고 있었다.
또 1년째인 1827년 여름에는 조세이아2세나 그 후 장차 아내가 될 에마 웨지우드와 유럽대륙을 여행하고 파리에 수 주 간 체재하고 있다. 이것은 최초이면서 최후의 유럽대륙 체재였다.
1831년에 중 상의 성적으로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했다. 많은 과학사가는 이 양 대학 시대를 다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보고 있는데 본인은 후의 회상록에서 <학문적으로는 케임브리지대학도(에든버러대학도)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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