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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3/8)

간천(澗泉) naganchun 2024. 4. 17. 00:23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3/8)

 

3, 에든버러대학( The University of Edinburgh)중퇴

 

 

1825(16) 때에 부친의 의업을 돕기 위하여 부모와 떨어져서 에든버러대학에서 의학과 지질학을 배웠다. 지질학의 로버트 젬손Robert Jameson1774-1854, 스코트랜드 태생의 박물학자. 광물학자. 지질학자, 지구과학자)교수는 제임스 하튼의 사고방식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학생인 다윈은 그것을 믿었다.

 

피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 마취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던 시대의 외과수술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곤충 채집 등을 통하여 실제체험을 하는 자연계의 자연성에 매료되어 있어서 아카데믹한 내용의 지루한 강의에 익숙해지지 못하여 학위를 받지 않고 1827년에 대학을 떠나게 되었다.

 

이 무렵 남미의 탐험여행에 동행한 경험이 있는 흑인인 해방노예 존 에드몬스톤에게서 동물의 박제 제작기술을 배웠다.

다윈은 그를 <매우 느낌이 좋고 지적인 사람>이라 하여 사모했다.

이것은 후의 비글호의 항해에 참가하여 생물표본을 만들 때에 쓸모가 있었다.

 

2학년 때에는 프리니(Prinnies)협회(급진적인 유물론에 매료된 박물학 학생들의 클럽.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대 프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대 프리니우스. 박물학자. 정치가, 군인, <박물지>의 저자)에서 따옴)에 소속하여 해양생물의 관찰 등에 종사하였다.

다윈은 로버트 그란드의 해양무척추동물의 생활환경과 해부학의 연구를 도왔다.

 

오늘 날 그란드는 잔=디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de Monet de Lamarck, 17441829, 프랑스 박물학자. 진화생물학 연구자)의 진화사상을 칭찬하였다.

다윈은 놀랐는데 그 무렵 조부의 저작을 읽어서 유사한 개념을 그리고 그 생각이 논쟁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의 박물학 수업은 지질학의 화성설과 수성설 논쟁 등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지루했다. 또 식물의 분류를 배워서 당시 유럽에서 최대의 컬랙션을 자랑하던 에든버러대학 박물관에서 연구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