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이야기(1/8)
찰스 로버트 다윈
1, 개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영국의 자연과학자이며 탁월한 지질학자이고 생물학자이다.
종의 형성이론을 구축하여 진화생물학을 발표하고 모든 생물종이 공통의 선조에게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 그가 자연선택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하여 진화해온 것을 밝혔다.
진화의 사실은 생존 중에 과학계와 일반대중에게 받아들여진 한편으로 자연선택의 이론이 진화의 주요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930년대이고 자연선택설은 현재에도 진화생물학의 기반의 하나이다. 또 그의 과학적 발견은 수정을 거치면서 생물다양성에 일관하는 이론적 설명을 주면서 현대생물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진화론 제창의 공적으로 오늘에는 생물학자라고 일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자신은 생존 중에 지질학자라 했고 현대학계에서도 지질학자라고 하는 인식이 확립되고 있다.
에든버러대학에서 의학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기독교신학을 배울 때에 자연사에 흥미를 키웠다. 5년간에 걸친 비글호에서의 항해에 의하여 찰스 라이엘((Sir Charles Lyell, 1st Baronet、1797-1875, 영국 지질학자, 법률가)의 *제일설(齊一說)을 이론과 관찰에 의하여 지지하고 저명한 지질학자가 되었다. 또 그 항해기(비글호 항해기)에 의하여 인기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제일설이란 /(齊一説(영: uniformitarianism)이란 자연에서 과거에 작용한 과정은 현재 관찰되고 있는 과정과 같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사고방식이다.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라는 표현으로 알려진 근대지질학의 기초가 된 지구관이다. 천변지이설에 대립하는 설로 등장했다.(위키페디아)===
비글호 항해에서 모은 야생동물과 화석의 지리적 분포는 그를 종의 변화의 조사로 이끌었다. 드디어 1838년에 자연선택설에 생각이 잡혔다. 그 아이디어는 친근한 몇 사람의 박물학자와 의론되었으나 보다 광범위의 연구에 시간을 걸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론을 쓰기 시작하려고 하던 1858년에 알프레드 럿셀 월레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 영국 박물학자, 생물학자, 탐험가, 인류학자, 지리학자)로부터 같은 아이디어를 논한 소론을 받았다. 두 사람의 소론은 즉좌에서 공동 발표되었다.
1859년의 저서 『종의 기원』은 자연의 다양성의 가장 유력한 과학적 설명으로서 진화의 이론을 확립했다.
1871년의 『인간의 진화와 성 도태』, 이어지는 1872년 『사람 및 동물의 표정에 관하여(영어판)』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성 선택에 대하여 논하였다. 식물에 관한 연구는 일련의 서적으로서 출판되어 최후의 연구는 지렁이가 토양에 주는 영향에 대하여 논하였다.
다윈의 탁월성은 인정되어 19세기에서의 왕족 이외로서 국장이 집행된 5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존 하셀(영어 ; 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st Baronet、1792-1871, 영국의 천문학자. 수학자. 로얄 겔프훈장. 왕립협회 회원)과 아이작 뉴턴(영어 ; Sir 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자연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의 이웃에 매장되고 있다.
2002년에 BBC가 행한 <100명의 가장 위대한 영국인>투표에서 제4위가 되었다.
(위키페디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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