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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4,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야기. (12/12)

간천(澗泉) naganchun 2024. 5. 30. 03:46

4,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야기. (12/12)

 

 

12, 아인슈타인의 인물상

 

아인슈타인은 취미로 바이올린 공연을 자주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친구인 아르투르 슈나베르(Artur Schnabel, 1882-1951,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작곡가)와 앙상불을 지었을 때에 몇 번이나 박자가 틀려서 슈나베르가 <자네는 수도세지 못하는가?> 하고 꾸중을 들었다 한다. <바이올린 명수>라는 평이 있었지만 당시 고명한 바이오리니스트는 <비교적 좋다>고 평가되고 있다.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이 2명이 있는데 장남 한스Hans Albert Einstein1904-1973, 스위스계 미국 공학자, 교육자)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교에서 유체역학 관련 교수이다. 차남 에드알드(Eduard Einstein1910-1965)는 의학 공부를 했는데 학생시대에 통합실조증이 발병되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그런 때문에 병적(病跡)학 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후년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미레바와의 파국은 아인슈타인의 가내폭력이 하나의 원인이고 정신을 앓은 에드와드에 대해서도 매우 냉담한 태도가 계속되었다는 것이 공표되고 있다.

 

재혼 상대인 엘사에는 전남편의 딸이 2명이 있었는데 재혼할 때에 그 딸들이 아인슈타인의 성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미레바와의 사이에는 딸이 있었는데 낳자 바로 양녀로 내었는데 그 후 소식은 모른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혀를 내밀고 있는 유명한 사진은 1951314일 아인슈타인의 72세 생일에 INS통신사 카메라맨이었던 아더 사스아 (Arthur Hjalmar Sasse1899-1991, 미국UPI통신사 카메라맨)<웃어주세요.>하는 부탁에 응할 번하여 그것을 숨기려는 표정을 촬영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사진은 아인슈타인이 좋아해서 9장이나 복사를 부탁했다고도 한다. 1951년도 뉴욕신문사진가상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았고 우표가 되기도 하였다.

 

1924년 루이스 보로이(Louis Victor de Broglie. 1892-1987, 프랑스 이론물리학자)가 솔본느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을 때 교수진은 아무도 그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교수의 한 사람인 아인슈타인에게 제2의 의견을 구한바 이 청년은 박사호보다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는 답을 얻었다. 그는 그 5년 후에 참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손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유명한데 1만 통 상의 편지를 주고받았었다고 한다.

 

수면 시간은 하루 10시간의 장시간수면이었다고 한다.

 

양말이 곧잘 찢어지므로 맨발로 구두를 신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