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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선풍기여 안녕!

간천(澗泉) naganchun 2024. 8. 26. 10:38

선풍기여 안녕!

 

 

한 달이 넘도록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이다.

아침에 선풍기를 켰더니 웬걸 돌지 않는다.

고장이 난 것이다. 고장난 선풍기를 고칠 수는 없다. 이젠 버려야 할 것인가?

 

버리게 된 선풍기를 생각하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 선풍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온 추억과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재산목록 제1호로 기록될 만큼 소중했던 이 물건이, 결국 고장이 나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선풍기는 단순히 바람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한국이 1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하던 197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1976, 한국은 경제성장의 초입에 서 있었고, 많은 가정이 가전제품을 처음으로 구입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일본 파견근무 중에 이 선풍기를 매입했다. 이 선풍기는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선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파견 근무라는 특별한 경험과 더불어, 그곳에서 가져온 이 선풍기는 귀국 후에도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선풍기는 일본의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설립한 마쓰시다 전기의 제품이었다.

그 당시에 마쓰시다 전기는 기술력과 품질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기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선풍기를 매우 신뢰하며 사용했다.

4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선풍기는 나의 곁을 지켰고, 소리 없이 모든 기능이 완벽하게 작동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가전제품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일종의 동반자와도 같았다.

 

이 선풍기를 아껴서 사용한 이유는 단지 그 기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의 추억과 함께 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매해 여름, 이 선풍기는 무더위를 날려주었고, 나는 그 바람에 실려오는 시원함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대화를 나누던 시간, 더운 날씨에도 이 선풍기 덕분에 꿀잠을 잘 수 있었던 기억 등, 이 선풍기는 나의 인생 속에서 많은 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선풍기는 더 이상 그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아끼고 관리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도 결국에는 수명을 다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이 선풍기를 버리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내셔널 선풍기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과 추억은 마음속 깊이 간직할 것이다.

 

4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위해 일해준 이 선풍기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만든 이 제품은 그저 기계 이상이었다.

그것은 나와 나의 가족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었고, 많은 여름날의 무더위를 견디게 해준 소중한 존재였다.

이제는 더 이상 그 바람을 느낄 수 없지만, 이 선풍기와 함께한 시간들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이 선풍기를 조상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이제는 안녕을 고할 시간이지만, 이 선풍기는 나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있을 것이다.

고마웠다, 내셔널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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