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자 39,
월리스 흄 캐러더스( 1896-1937) 이야기.(4)
==나일론 등의 합성 섬유, 합성고무를 발명하여 고분자과학과 화학 섬유 나일론의 아버지==
5, 사생활과 연구
이 무렵 캐러더스의 사생활은 매우 분주했다. 기혼 여성인 실비아 무어와 연인 관계가 되었고, 그녀는 1933년에 이혼했다. 같은 시기,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곤궁해져서 그들을 윌밍턴으로 불러들이려 했다. 그는 깊은 고민 없이 연구소에서 약 16km 떨어진 아든에 집을 사 부모님과 함께 이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곧 부모님과 긴장 관계가 생겼다. 캐러더스는 이혼한 실비아 무어와 계속 교제했는데, 부모님은 그 관계를 강하게 반대했다. 가정 내 긴장이 캐러더스를 지치게 하는 것을 깨달은 부모님은 1934년 봄에 다시 디모인으로 돌아갔다.
폴리아마이드 연구
1934년, 캐러더스는 다시 합성 섬유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이번에는 팀이 글리콜 대신 디아민을 사용해 폴리아마이드라는 고분자를 만들고자 했다. 폴리아마이드는 글리콜로부터 만들어지는 폴리에스터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수소 결합을 통해 결정성 영역을 형성할 수 있는 폴리아마이드의 특성은 기계적 성능도 향상시켰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합성 섬유를 생산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 결과, 새로운 폴리아마이드를 발명하게 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W.R. 피터슨과 도널드 코프먼이 주도했다. 1935년에는 제라드 벨셰가 이 폴리아마이드 연구를 맡게 되었다.
1934년 여름, 이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던 중에 캐러더스는 나일론을 발명하기 전에 모습을 감췄다. 직장에 나타나지 않고 실종된 그는 볼티모어의 정신과 진료소에서 발견되었다. 우울 증상이 심해져 볼티모어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고, 그 의사가 그를 입원시켰던 것이다.
나일론 탄생
진료소에서 퇴원한 직후, 캐러더스는 듀폰에 복귀했다. 볼턴은 그에게 폴리아마이드 연구를 지시했다.
캐러더스는 특별한 용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미지에의 도전으로서 선형 초고분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화학의 새로운 분야였으며, 듀폰은 어떤 형태로든 화학에서의 돌파구가 회사에 큰 가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연구 중, 캐러더스는 고온에서 끈적한 고체가 되는 초고분자를 여러 개 얻었고, 그 용융 상태의 고분자에 막대를 담갔다가 꺼내자 단섬유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했다. 이 발견으로 프로젝트의 중심은 이 단섬유로 옮겨졌고, 그 결과 나일론이 탄생했다.
1935년 2월 28일, 제라드 벨셰는 캐러더스의 지도로 헥사메틸렌디아민과 아디픽산으로부터 반온스의 고분자, 폴리아마이드 6-6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나일론이라 명명되었다. 이 폴리아마이드는 녹는점이 높아 다루기 어려웠지만, 볼턴은 이를 제품화하기로 결정했다. 제품화를 위해 볼턴은 조지 그레이브스를 캐러더스에게 붙였고, 결국 그레이브스가 폴리아마이드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었으며, 캐러더스는 해임되었다.(계속)
출처= https://ja.wikipedia.org › 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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