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시계의 5000년의 역사 6
6, 간편하다고 평가되던 모래시계
<천연소재를 활용한 쓰기 편한 시계>라면 누구나 모래시계를 생각할 것이다. 문학작품이나 시가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모래가 걸림이 없이 차례대로 마끌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매료되어 그야말로 시간이 경과하는 것 마저 잊어버릴 것 같아진다.
사용방법은 양리형의 유리구슬 2개를 이은 모양의 그릇의 한 쪽에 모래를 채워서 모래가 담긴 쪽을 위로 하여 수직으로 세워두면 위에서 모래가 미끄러지며 떨어진다. 모래 모두가 아래 그릇에 떨어진 순간이 그 시계가 설치된 소정의 시간의 종료를 나타낸다. 모래의 양(그릇의 크기에 비례한다)으로 떨어져 종료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뒤집어 되풀이함으로써 계측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모래시계는 당초에 기계식 시계와 함께 정전사(錠前師/자물쇠 만드는 사람)들이 여가에 만들어졌다.
시계사라는 직업이 생기기 전에 유럽에서 정밀가공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정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래시계는 회원 멤버에게만 제조가 허가되는 길드조직의 대상품이 아니라 <자유공예>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판로가 크게 확대되어서 17세기에는 독점적 길드조직에 규제되었다. 1698년에 출판된 그리스토파 바이겔(Christoph Weigel's)의 <일반적 실용적주요직업의 도해>에 따르면 주장의 자격을 얻는 데는 수분에서 3시간용까지 대소 합해서 6개의 모래시계를 제작하여 검정에 합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다.
차체에 당시 모래시계 만드는 법은 조금 대강 모래를 봉입시켜 완성된 모래시계를 검정용 모래시계와 함께 스타트시켜 검정용 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진 순간에 모든 모래시계를 눕혀 각각의 구슬의 허리 부분을 열어서 남은 모래를 꺼내는 방법이었다.
모래는 물과 달라서 얼거나 증발하거나 하지 않으므로 특히 추운 북유럽에서 귀한 보물 취급을 받았다. 모래가 막히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당초에는 입자가 가늘게 정제되었다는 평판의 독일 드레스덴(Dresden)의 모래가 중용되어 흑대리석의 가는 입자를 술에 삶아 표면을 다듬었다고 한다.
모래시계의 탄생시기와 발명자
8세기에 루이트브란드(Ruitpland)승정이 고안했다는 설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서 기계식시계가 발명된 시기(1300년경)를 조금 올라간 13세기였던 것 같다. 그 후 기계식시계가 등장해서도 장기간 사용된 것은 조달 가격이 싸고 정확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사용방법이 알기 쉽다는 것 어디서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조용하고 그리고 온도변화나 흔들림 등의 환경의 변화에 상하기 때문이었다.
초기의 기계식시계는 큰데다가 조야한 소리를 계속 내기 때문에 조용해야하는 서제나 교회 등에서는 모래시계가 중요시 되었다. 신부나 신자도 잘 볼 수 있는 성서의 곁에 놓인 점도 있어서 아름답게 장식되고 참나무나 가위 모양의 쇠붙이 장식 혹은 돌치기로 고정된 상태로 반전을 반복했다.
설교단의 모래시계는 신부로서도 신자로서도 설교가 어느 정도 나갔는지 앞으로 어느 정도 남았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는데 설교가 열이 오르게 되면 <또 한 번 뒤집어 놓읍시다.>고 말하고 눈앞의 모래시계를 반전시키는 일도 자주 있었다.
습기, 온도변화, 흔들림에도 강하기 때문에 항해용 선박의 시계로서도 18세기까지 활략했다.
4시간, 2시간, 30분용의 모래시계가 만들어져서 4시간계를 몇 번 뒤집었는가 하는 것으로 진행거리를 측정하고 30분계에 따라 선원이 작은 종을 울려 선내에 시보를 내곤 했다고 한다.
당직용 시계를 반전시키는 것은 오피서가 타수에게만 허용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당직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시간이 오기 전에 부당하게 반전시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 행위를 독일인은 <타수가 병을 깼다.>고 하고 영국인은 <타수가 잔을 속였다.>고 또 프랑스인은 <타수가 모래를 먹었다.>고 표현하였었다.
모래시계를 시간 전에 반전시키는 부정행위는 다른 선원에게 폐를 끼칠 뿐 아니라 선박의 위치 측정을 틀리게 하여 항해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므로 엄금하고 처벌 대상이었는데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방지할 수가 없었다.
또 모래시계의 기능을 다시 높이려는 노력도 행해졌다. 유리구슬을 몇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누어 가는 눈금을 붙여서 작게 시간을 재려는 시도나 정확도를 올리기 위하여 모래 대신에 수은을 사용하거나 위 구슬에 모래가 없어지면 기계로서 반전하는 장치를 붙이는 등 보조기능 쪽이 큰 장치가 되어서 이점이 간편함을 감쇠시키기 때문에 모래시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계측시계가 1년간 곧 반전시키는 것이 1년에 1회라는 세계 퇴대의 모래시계도 존재한다.
돗도리현 오타시 니마(島根県大田市仁摩町)의 니마 산드 뮤지엄(nima sand musium)에 1990년에 완성한 <노래 달력>으로 전장이 5.2미터 직경이 1미터의 용기에 들어있는 모래 1톤이 직경 0.8밀리미터의 구멍을 통하여 매초 0,032그램씩 떨어진다. 1991년 1월 1일부터 운용이 시작되어 매년 그믐에는 시민이 참가하는 행사가 행해지고 참가자들로서 <모래달력>을 뒤집는다.*
일본어원문=家庭で重宝された「火時計」、錠前師たちが作った「砂時計」…知られざる時計の歴史
출처=https://gendai.ismedia.jp/articles/-/8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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