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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43화. 대붕과 아지랑이(내편 소요유)

간천(澗泉) naganchun 2009. 9. 9. 04:14

 

제43화. 대붕과 아지랑이(내편 소요유)

 

  장자는 또 다른 면에서 이야기한다. “우리들이 크다 작다 할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 우열의 생각이 따라 일어난다. 그러나 그 우열이라는 것은 또 사물을 보는 면에 따르는 것으로 그 근본을 캐어 들어가면 여기에 크고 작음의 생각은 없고, 우열의 생각도 없어진다.”고 한다.

 

 소요유편의 처음에 대붕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중에 큼과 작음에는 우열이 없다는 논의가 숨겨져 있다.

먼저 대붕은 물결을 치기 삼천리,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 높은 곳에 올라간다. 이렇게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하는가 하면, 장자는 바로 그 밑에 ‘아지랑이나 먼지가’ 라고 붓끝을 돌린다. 그래서 아지랑이나 먼지가 대붕의 밑에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장자는 다시 말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면 창창한 푸른 하늘이 이어져있다. 혹시 우리들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마치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듯이 푸르고 멀리 보일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장자가 말한 그 말속에 담긴 생각은 구만 리 높은 곳을 날아가는 대붕이 하늘로 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에는 구만 리나 겹쳐진 공기의 알맹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기가 없다면, 한번 치고 구만 리를 올라가는 대붕도 남쪽을 향하여 날아갈 수가 없다. 거기에 장자는 말을 이어서, “물이 쌓임이 두껍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공기가 쌓여있지 않으면 커다란 날개를 짊어질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크다 작다 하면, 언제나 거기에는 큰 것이 작은 것보다 낫다는 우열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장자의 생각에 의하면 큰 것도 반드시 작은 것의 힘에 의한다. 한번 치고 구만 리를 올라가는 대붕도 실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아지랑이나 먼지의 힘에 의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큰 것도 반드시 크지 않고, 작은 것도 반드시 작지 않다는 것이 되어서 여기에 큼과 작음의 차별은 다른 면에서 철폐될 것이라고 말한다.

 

  큼과 작음은 한가지라고 보면, 정밀함과 조잡함이나 귀함과 천함도 한가지이다. 우리들은 늘 정밀하다거나 조잡하다고 말하지만, 그 정밀하고 조잡함이라는 것은 언제나 형체가 있을 때에만 한정되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가르친다. 다시 그 생각을 진행시켜 귀함과 천함도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사물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어서야 귀함과 천함이 있지만, 사물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 귀함과 천함도 없다. 그래서 장자는 “도로써 이것을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고, 사물로써 보면 스스로 귀하다고 하여 서로 천시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귀함과 천함마저 철회한 장자는 또 발이 잘린 올자 신도가의 이야기를 내놓고 귀천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