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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44화. 올자와 정(鄭)나라 자산(子産)(내편 덕충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9. 10. 04:16

 

제44화. 올자와 정(鄭)나라 자산(子産)(내편 덕충부)

 

  신도가(申徒嘉)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정나라 자신(子産)과 동문수학하는 사이이다. 이 자산은 매우 현명한 현인으로 《논어》에도 자주 칭찬되는 사람이고, 혹은 공자도 자산의 행함을 배웠다고 말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그 자산과 신도가가 함께 백혼무인(伯昏無人)이라는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자산은 정나라의 재상이니까, 죄로 발이 잘린 올자 신도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가 매우 싫었다. 그래서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나는 그대하고 함께 나고 드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니 내가 먼저 나가면 그대는 남아있어 다오. 그대가 먼저 나가면 나는 남는다. 행동을 같이 하기는 싫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 자산이 가보니 모른척하고 신도가가 같은 집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산은 점점 싫증이 나서, 다시 신도가에게 “내가 먼저 나가면 그대는 멈추어 있게. 그대가 먼저 나가면 내가 멈춘다. 이제부터 나는 나가니까 그대는 멈추어있게나.” 하고 말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신도가는 입을 열었다.

“실은 나나 그대나 백혼무인 선생의 제자로서 배우고 있다. 이 백혼무인 선생의 제자로서 배우는 우리들 사이에 재상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머리 속에서 생각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그대가 재상이라는 것을 득의연하여 나를 물리치고자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나는 사실 발이 잘린 죄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시게. 세상에는 가지가지의 사람이 있어서 실제는 나쁜 일을 저지르면서도 발은 잘리고 싶지 않다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처럼 잘못은 했어도, 발은 잘리었어도 태연한 인간은 매우 적다. 그래서 수양이 모자랐던 시절의 나는 세상의 나쁜 놈들이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주제에 그저 발이 온전하다는 것만으로 나쁜 일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발이 잘린 나를 비웃는다. 그 하는 짓이 괘씸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는 나도 불끈 성을 내기도 했다. 선생의 제자가 되어서 보니까 세상의 기쁨이라든지 성냄 같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알았다. 곧 백혼무인 선생은 선을 가지고 우리들을 씻어준 것 같다. 그런데 다시 그대의 이야기가 되겠는데, 그대와 나는 함께 백혼무인의 제자로서 19년이나 배워왔다. 그 19년 사이에 나는 지금도 자신이 발이 잘린 올자라고는 자각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형체를 도외시하고 그대와 교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대는 지금도 변함이 없이 자신은 재상이고, 너는 올자다 라고 한다. 그러면 그대는 언제까지라도 나와의 교제를 형체 내부에서 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힐책했다.

 

이에 자산도 처음으로 자신이 깨닫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모습을 고쳐 이에 사과하며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만 말하지 마라 다오. 하고 항복했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만일 우리들이 ‘무’라는 입장에 서면 거기에는 귀함과 천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 예이다. 장자는 이렇게 하여 큼과 작음은 한가지라고 보고, 동시에 많음과 적음, 정밀함과 조잡함, 귀함과 천함 등을 철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