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덕이 뛰어나면 겉모양은 잊어버린다(내편 덕충부)
“인기(闉蚑), 지리(支離), 무신(無脤)이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에게 도리를 이야기했다. 영공은 그를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몸이 완전한 사람들을 그와 비교해 볼 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목이 길고 가늘어 밉게 보였다 하고, 또 옹앙(甕盎), 대영(大癭)이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 도리를 이야기했다. 환공은 그를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몸이 완전한 사람들을 그와 비교 해 볼 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목이 길고 가늘어 밉게 보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덕이 뛰어나면 그 겉모양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잊어야 할 것 겉모양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 도덕은 잊고 있으니 이것을 성망(誠忘) 곧 진짜의 잊음이라 하는 것이다.”(덕충부)
앞에서 말한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그런데 모두가 비정상인들 뿐이라는 점이다. 숙산무지나 왕태는 올자이다. 올자라 하면 형벌에 의하여 발이 잘린 사람이다. 더구나 이름으로만 보아도 무지(無趾)라 한다. 무지(無趾)라 하면 발꿈치가 없다는 뜻이다. 또 태(駘)라 한다. 태(駘)라는 것은 절뚝이 말을 말한다. 그밖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감복하여 국정까지 맡기려 했던 사람은 애태타(哀駘它)라는 천하에 유가 없는 추남이고,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신임을 얻은 사람은 인기(闉跂), 지리(支離), 무신(無脤)의 세 사람이다. 인기(闉跂)란 발이 오그라져서 발가락으로만 걷는 사람이고, 지리란 사지가 균형을 잃은 꼽추이고, 무신이란 아랫입술이 없는 언청이를 말한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 도를 말한 사람으로 옹앙(甕盎), 대영(大癭)이란 사람이 있다. 이 옹앙이나 대영은 목에 옹기만한 혹이 달린 사람이다.
장자는 이처럼 비정상인을 들고서 덧붙여 말하기를 “성인은 자신의 내면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닐므로 지혜는 하나의 쓸데없는 곁가지라 생각하고, 예법은 하나의 물건을 붙이는 아교풀로 생각하고, 저 덕은 끊어진 것을 붙이는 접붙임으로 생각하며, 공예는 하나의 장사라 생각하는 것이다. 성인은 일을 꾀하지 않으므로 지혜를 쓸 필요가 없고, 자연에 맡겨 끊어짐이 없으니 아교풀을 쓸 필요가 없으며, 잃을 것이 없으니 덕을 쓸 필요가 없고, 자기를 팔려고 하지 않으므로 장사를 할 필요가 없다. 이 네 가지 꾀하지 않음(불모/不謀), 깍지 않음(불착/不斲), 잃음이 없음(무상/無喪), 팔지 않음(불화/不貨)은 천륙(天鬻)이니 천륙이란 하늘이 성인에게 주는 공양이다. 이미 하늘의 공양을 받았으니 또 사람의 것(지혜, 아교풀, 덕, 장사)을 써서 무엇 하겠는가? 그 성인은 사람의 형체를 가졌지마는 사람의 정(情=욕망)은 가지지 않았다. 사람의 형체를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살고, 사람의 정은 가지지 않았으므로 옳고 그름이 마음에 붙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고 인간 세계에 속하는 작은 존재이지만, 정(욕망)을 가지지 않아서 우주 안에서 아무 것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데서는 한 없이 큰 우주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홀로 그 하늘에서 받은 덕성을 이루었다.”(내편 덕충부) 하고 말한다.
장자는 비록 겉모양은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지니지 못한 비정상인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는 뛰어난 덕성을 지니고 있어 성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장자는 왜 이렇게도 비정상인을 좋아했을까. 위나라 영공이나, 제나라 환공이나 비정상인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자 보통 사람의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옛날 애꾸눈의 창부와 친해졌던 유야랑(遊冶郞)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나이는 후에 보통 부인을 보면 모두가 눈 하나가 더 많아 보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자가 이처럼 비정상 인을 내놓는 것은 “덕이 뛰어나면 겉모양은 잊어버린다.” 곧 정신이 훌륭하면 형체쯤은 아무래도 좋다는 말인데, 인의예악의 가르침에 의하여 몸을 구속하고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공자의 제자들도 역시 비정상인이 아닌가 하는 조소의 의미를 우화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악에 굴절하고 인의에 기뻐하여 천하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상연을 잃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공자의 입을 빌어서 말함으로써 마치 공자마저도 점점 노장의 사상에 기울어졌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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