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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19화. 빈 채로 가서, 채워서 돌아온다(내편 덕충부)

간천(澗泉) naganchun 2009. 7. 31. 07:28

 

제19화. 빈 채로 가서, 채워서 돌아온다(내편 덕충부)

 

  또 노(魯)나라에 올자로서 왕태(王駘)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히 인망이 높아서 공자의 제자와 필적할 만한 수의 제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안 공자의 제자 상계(常季)는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공자를 찾아가 말하였다.

 

“왕태라는 사람은 올자인데도 너무나 인기가 높으므로 저도 찾아가보았습니다만, 그는 특별히 교단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없고, 방에 앉아서 논의하는 바는 없으나, 어쩐 일인지 머리가 빈 사람이라도 한 번 그 사나이를 만나러 갔다 오면, 돌아올 때는 반드시 무엇인가 모르는 머리 속에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말없는 가르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저 사람의 가르침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속에서 자연히 교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왕태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입니까?” 곧 서서 가르치는 바도 없고 앉아서 논의하는 바도 없지마는 한 번 만나기만 하여도 빈 머리를 채워서 돌아온다는 것은 참으로 말없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교육도 이 정도에까지 이른다면 훌륭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왕태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아니다. 왕 선생은 매우 훌륭한 선생이다. 실은 나 자신도 저 선생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나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에 미치지 못하는 자임에랴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노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모두 데리고 가서 함께 가르침을 받고 싶을 정도이다.”

 

 상계가 말하기를 “저 사람은 형벌로 발이 잘린 올자입니다. 그런데도 선생님보다 훌륭하다면 보통 사람은 발밑에도 따르지 못할 터인데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하고 되묻는다.

 

  이에 공자는 말하였다. “삶과 죽음은 인생의 중대사이다. 그런데 이 삶과 죽음의 변화마저도 그를 움직일 수는 없다. 비록 천지가 뒤집혀 무너진다 하더라도 그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인생과 우주의 참모습을 살펴서 일체 변화의 밖에 서서 모든 변화의 모습을 자연으로 보고 도의 근원에 자신을 두어서 순간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경지에 있는 것이 왕태의 심경이다.”(내편 덕충부)

 

 이 사람은 만물은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자연의 변화와 일체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손발이 잘리어도 잘리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잃으면, 저기서 얻는다고 하는 만물일체관에 서있는 훌륭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공자도 노자와 장자가 주장하는 만물일체관에 매료되어서 그 가르침을 받으려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으니, 어느새 공자 자신도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노장류의 인물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