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이야기 2
남사제도의 영유권을 중국이 주장하는 이유
전후에 점령한 것은 중화민국(타이완)
본질적인 질문으로서 해남도(海南島)에서 많이 남하한 해역의 섬들까지 중국이 <우리 영토이다.>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360만 평방 킬로의 해역에 크고 작은 섬이 300이나 있는 남중국해에는 남사제도 외에도 서사제도, 동사제도, 중사제도 등이 있다.
그것들 어느 것에나 중국영유의 법이론적 근거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지금의 타이완인 <중화민국>에 의하여 정리된다. 남사제도의 최대의 섬인 태평도(太平島) 는 지금도 타이완이 <고웅시기진구중흥리(高雄市旗津区中興里)>라는 지명으로 실효지배하고 있다. 동사제도도 같이 <고웅시>의 행정구역으로 해서 타이완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도 그런 경위와 관계가 있다.
남중국해의 섬들이 중국문헌상에 등장하는 것은 극단으로 말하자면 한 대(漢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근대 이후에 남사나 서사에 국가로서 최초로 손을 펼친 것은 베트남의 종주국인 프랑스로 1933년부터 소수의 병사를 주둔시켰다.
이 때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반발하여 <중국남해도서도(中國南海島嶼圖)>를 공표하여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에 일본이 프랑스군이나 베트남 어민을 추방하여 최초로 서사, 이어서 남사를 점령하였다. 일본은 군사거점을 두어서 자원개발도 시도하면서 남중국해 전체를 종전까지 지배하였다.
문제는 1945년 이후 공백이 된 남중국해 섬들을 프랑스군은 재빨리 점령하였으나 베트남 내전으로 곧 철수하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화민국국민정부는 <태평호(太平號)> 등 4척의 군함을 파견하여 1946년 말까지 주요한 섬들을 점령하고 측량도 행한 끝에 <남해제도위치도>를 작성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 남사제도 등을 포함한 남중국해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원적인 논거가 되고 있다.
9단선은 원래는 11단선
이 <남해제도위치도>는 최남단을 북위 4도 부근으로 하고 동사, 서사, 남사, 중사의 섬들의 위치와 명칭을 확정하였다. 다시 중요한 것은 <11段線>이라 불리는 11본의 경계선을 써서 남중국해를 <중국해>라고 확정한 것이다. 모양이 U자형이기 때문에 U형선이라고도 한다.
다시 <중화민국행정구역도>를 공표하여 여기에도 <남해제도위치도>를 붙이고 있다. 이것으로 국제사회에 대하여 <남중국해의 중국영유>를 선언한 것으로 해 그 후 중화민국은 대륙을 상실하고 타이완에 철퇴하여 남중국해의 영유권문제의 주도권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타이완은 그대로 남중국해는 <중화민국의 영토>라는 위치를 정한 것은 변하지 않았고 비행장을 가지고 병사가 주둔하는 남사제도의 태평도와 동사제도의 현상 유지에 철저히 하여 중국과 같은 새로운 섬을 점령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남사제도 등의 영유권을 포기하는데 귀속선은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한편 중국은 1953년 11단 중 당시는 사이가 좋았던 베트남과의 영역에 해당하는 동킹만 선과 북부만선의 2선을 삭제하여 새로 <9단선>으로 하여 1958년에 <영해선언>을 내고 남중국해의 섬들을 포함한 해역의 영유를 선언하였다. 1970년대에 서사제도를 베트남과의 전쟁을 겪어서 실효지배 하에 두고 남사제도에서도 1980년대부터 복수의 섬들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본래는 영토에로의 편입으로 해서 영해를 확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중국이 실효 지배하는 섬은 극히 일부이고 선점주의를 취한다하더라도 원래 같으면 남중국해 전체의 섬들의 중국영유의 합법성은 결코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왜 9단선(11단선)이 중국 영해의 경계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중화민국이 정하고 우리가 이었다>고 하는 데에 귀착하므로 의논이 깊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의원이나 싱크탱크의 연구자가 <타이완에서 남중국해 관련의 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하는 발언을 종종하지만 남중국해를 영해라 하고 그 섬들을 영토라 주장하는 논거의 시료는 이러한 경위로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타이완이 잡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본가(타이완)의 의지
이 문제에 대하여 타이완의 마영구(馬英九) 총통은 5월 26일에 <남중국해 평화 이니시어팁>을 발표하여 주권문제의 논의 장에 올리는 것과 공동자원개발 등 평화적인 형상 유지를 호소하는 구상을 발표하였다. 타이완으로서는 대미관계와 대중관계와의 샌드위치가 되는 것을 피하여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만들어낸 본가로서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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