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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제31위, 사랑하는 여성 권리 향상자 <어밀리아 에어하트><더 보기 3>

간천(澗泉) naganchun 2023. 6. 16. 02:40

제31위, 사랑하는 여성 권리 향상자 <어밀리아 에어하트><더 보기 3>

 

 

결혼

 

에어하트는 잠시 동안 보스턴 출신의 화학 공학 기술자 새뮤얼 채프먼과 열애했으나, 19281123일에 헤어졌다. 같은 시기에, 그녀는 조지 P. 푸트남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GP’로 잘 알려진 조지 P. 푸트남은 1929년 이혼 후 에어하트와 교제했고, 6번의 구애 끝에 193127일 코네티컷 주 노엉크의 푸트남의 모친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에어하트의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당대엔 자유주의적이라서 가족 부양의 책임은 양쪽 모두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Mrs. Putnam으로 언급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언급하길 고수했다. 뉴욕타임즈가 인쇄 편람에 따라 그녀를 Mrs. Putnam으로 언급하길 주장하자, 그녀는 그것을 웃어넘겨 버렸다. 에어하트와 푸트남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지만, 푸트남의 전 아내인 도로시 비니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이 있었다.

몇 년 후에, 라에에 위치한 푸트남의 거주지에 불이 났고, 에어하트의 개인 기념품을 포함해 푸트남 가족의 귀중품 중 다수를 태웠다. 푸트남이 그의 사촌인 파머에게 출판사의 소유권을 팔았기 때문에, 푸트남과 에어하트는 서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932년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

 

193252034살의 나이로, 그녀는 출발 날짜 확인을 위한 지역 신문의 복사본과 함께 뉴펀들랜드 하버그레이스를 출발했다. 그녀는 찰스 린드버그의 단독 비행에 필적하기 위해 단발기인 록히드 베가 5b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려 했다. 이번 비행의 기술고문은 저명한 노르웨이계 미국인 파일럿 베른트 발첸이었다. 14시간 56분 동안 비행한 후 강한 북풍과 추운 날씨, 기계적 문제 때문에 데리 북쪽의 컬모어에 있는 한 목초지에 착륙했다. 이 지역은 현재 작은 박물관인 어밀리아 에어하트 센터이다. 그녀가 대서양을 무착륙으로 횡단한 첫 여성이었기에, 미국 국회로부터 공군 수훈 십자 훈장,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허버트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상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녀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녀는 고위 관직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그녀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영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와 친교를 맺었는데, 엘리너는 에어하트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특히 여성의 주장에 대해 많은 것을 나누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빈번하게 연락했다. 가른 유명한 비행가이자 대중들이 에어하트의 강력한 라이벌이라 간주했던 재클린 코크란 역시 이 시기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기타 단독 비행

 

1935111일에 그녀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까지 단독으로 비행한 첫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마지막 시간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방송을 들을 만큼 편안하게 있었다. 다음해 419일에는 로스앤젤레스부터 멕시코시티까지 단독으로 비행했고, 멕시코시티에서 뉴욕까지 무착륙으로 비행하려 했다. 뉴저지 주 뉴어크에 그녀를 환영하기 위해 모인 관중들은 그녀가 군중들 사이로 활주하지 않게끔 하려고 조심할 만큼 많아 문제였으나 비행은 무사히 끝났다.

 

에어하트는 다시 장거리 경주 비행에 참가했고, 1935년 벤딕스 트로피 레이스에서 5등을 했다. 이 대회는 특히 거친 대회였는데, 짙은 안개와 격렬한 폭우가 경주를 방해하며 대회 참가자였던 세실 앨런이 이륙 도중에 화염에 휩싸여 사망했고, 라이벌 재클린 코크란은 기계적 문제 때문에 은퇴하게 되었다.

1930년부터 1935년까지, 에어하트는 키너 에어스터, 록히드 베가와 피트케언 오토자이로를 포함한 다양한 기종으로 속도와 비행거리에서 7개의 여성 비행 기록을 세웠다. 1935년에 그녀는 장거리 대양 횡단 비행에서의 록히드 베가의 한계를 깨닫고 깊은 생각 끝에 새 비행기에 탑승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