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5/8)
유럽 순회공연
1957년 4월 마리아 칼라스는 남편 메네기니 및 루키노 비스콘티와 함께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Anna Bolena) 스토리를 읽고 시연을 기획했다. 시연 후 비평가들의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다.
1958년 1월 2일 로마 오페라(Opera di Roma) 극장에서 이탈리아 대통령 조반니 그론키 앞에서 <노르마>를 공연했는데 몸이 좋지 않아 약을 먹고 공연하였으나, 통증과 약기운 등으로 공연 중간에 그만두게 됐다.
이때 이탈리아의 청중들은 화가 나서 그녀를 맹비난했다. 동시에 칼라스는 극장주와도 격렬히 싸우고 극장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1958년 5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피에타> 공연 중, 감독 안토니오 기린겔리와의 오랜 갈등으로 59년 말까지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그런데 58년 11월 6일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루돌프 빙(Rudolf Bing) 총감독은 1959년 시즌에 칼라스를 투입하지 않기로 하고 해고를 통보해왔다. 남편인 메네기니는 유럽의 콘서트를 알아보았고, 1958년 12월 19일 칼라스는 파리에서 파리 오페라(Paris Opera)의 콘서트에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오나시스 등의 명사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 전지역의 극장에서 공연하거나 초청받았고 이탈리아 오페라, 프랑스 오페라, 독일 오페라, 영국 오페라와 현대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와 뮤지컬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 소화하였다.
성역이 넓고 성량도 풍부하며 레퍼토리도 다양하였다. 스케일이 큰 연기 및 가창표현, 비범한 발성 능력을 요구하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냈다. 그는 동시대의 소프라노 중 레나타 테발디와 종종 비교되었으며, <토스카나>, < 나비부인> 등의 주연을 놓고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1958년 파리 오페라제에 초청되었다. 당시 파리 공연 중 그는 그리스의 선박왕 애리스토틀 오나시스를 만나는데, 오나시스는 VIP석에서 그의 노래 모습을 지켜보다가 매료된다. 이후 오나시스는 그에게 계속 구애해왔다. 1963년 파리의 애비뉴 포크로 이주하였다.
1963년 6월 5일 파리에서 <토스카> 공연을 선보였다. 1964년 1월 콘벤트 가든에서 토스카를 공연했는데, 위대한 공연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1965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토스카를 아홉 번 공연하고 3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토스카>를 두 번, 5월에는 다시 파리에서< 노르마>를 다섯 번 공연하였다.
이때 피로를 느꼈으나 공연을 강행하였고, 공연을 취소하라는 의사의 충고에도 7월 콘서트를 강행한다. 1965년 7월 5일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상영된< 토스카>의 주연 토스카 역을 맡아보았고, 1965년부터는 오페라 연출, 연기지도 등도 맡아보았다.
1966년 칼라스는 파리 외곽으로 이주, 1970년에는 영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영화 <메데아>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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