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빅터 베스코보의 『심해여행기』 (1)
-인류 최초로 <5대양최심부도달>은 어떻게 성취했는가?-
인류 최초의 <5대양 최심부 도달>은 어떻게 성취하였는가? 투자가로 7대륙최고봉과 5대양최심부의 두 곳에 도달한 유일한 모험가 빅터 베스코보(Victor Vescovo)이다.
특별 주문한 잠수정을 만들고 5개의 해저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까지의 걸어온 길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곤란이 일어나도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잡지 『 WIRED』 일본판VOL.38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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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베스코보는 역사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2019년 8월 24일 텍사스 출신으로 53세인 그는 이제부터 특별히 주문한 잠수정에 타서 북극해와 그린란드해, 노르웨이해를 연결하는 후람해협(Fram Strait=그린란드와 스바르발제도(Svalbard) 사이의 해협이다. 북극해와 그린란드해를 잇는다.)에 위치하는 깊이 5,550m인 몰로이디프(Molloy Deep、Molloy Hole라고도 함)의 해저를 향한다.
심해탐사잠수정의 모선 <프렛샤 드로프( Pressure Drop) >의 48명의 승조원과 승객은 노르웨이의 스바르발제도에서 17시간에 걸쳐서 이 북극해의 대해원(大海原)에 왔다. 베스코보는 이 해저에 잠수하여 인류사상 처음으로 북극해의 최심부에 도달할 뿐 아니라 지구의 5대양 모두의 최심부를 탐사한 최초의 인간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5대양의 최심부를 탐사하는 화이브 디프스(the Five Deeps Expedition)의 잠수가 출발한 것은 2018년 12월이다. 베스코보는 자신의 잠수정 <리미팅팩터(Limiting Factor)>에 타서 대서양, 부에르토리코해구(수심8,376m)의 해저로 향했다. 그 이후 남극해의 사우스샌드비치해구(수심7,433m), 인도양의 쟈바해구(수심7,192m), 태평양의 마리아나해구(수심1만928m)에서 탐사를 행하여 나머지는 북단에 있는 최심부뿐이었다.
모로이 디프(Molloy Deep)의 잠수는 구상에서 4년 이상 걸린 프로젝트의 절정이다. 그 대모험 중에서 프렛샤드로프(Pressure Drop) 는 46,262해리를 항해하고 수백만 달러를 걸어서 몇 백 명의 과학자, 조사원, 엔지니어, 승조원이 고용되었다. 그 비용은 프라이베이트에퀴티(private-equity)기업을 경영하는 베스코보가 내고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이 잠수에 걸려있었다. 폭풍이 불기 전에 3일 간의 호기가 있다. 그것을 놓치면 베스코보는 다시 1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잠수하는 당일 바람의 영향으로 체감온도는 마이너스, 8도C, 수온도 겨우 0.4도C였다.
바로세로나의 드라이도크에서 물을 빼고 재장비되는 리미팅팩터(Limiting Factor)이다. 해저에 닿은 베스코보는 2-4시간 걸려서 로봇암으로 암석의 샘플을 채취하고 해저를 돌아다녀서 생물학, 지질학, 지도학에 관계되는 정보를 가능한 한 비디오에 담았다.
리미팅 팩터는 티탄제(Titan/고품질 금속)로 전통적인 원통형이 아니라 2개의 <눈>과 같은 창이 달린 잠수정이다. 모선의 뒤에 착실히 고정되어 베스코보의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성과 시스템의 확인이 끝나자 베스코보가 선미의 메인덱키에 나타났다. 푸른 이음매 모습에 가슴의 와팬(Wappen/문장)에는 <Vescovo>라고 적혔고 바른팔에 텍사스주와 합중국 기의 문장이 보인다. 그는 덱키 위를 걸어서 <프로젝트를 매듭짓는 잠수이다.>라고 승조원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말하였다.
베스코보의 잠수정은 5대양의 최심부에 반복하여 잠수하기를 의도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모델이다. 해저에 널린 어두움에서는 이 11.7t, 길이 4.5m의 잠수정이 위의 세계와의 유일한 연락수단이 된다.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도망칠 길이 없다. 해면 하 5,000m 앞에는 길안내표식도 안전 로프도 없다. 준비가 되자 베스코보는 잠수정 위에 기어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인지(人指)를 들었다. 다음 하나이다. 이 최후의 잠수로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하얗게 빛나는 잠수정 안으로 사라졌다.
베스코보가 처음으로 탈것을 움직인 것은 겨우 3세 때이다. 자기 집 자동차에 혼자서 타면 기아를 뉴트랄에 넣어 가까운 공도로 처박았다. 기적적으로 달리 상처를 입은 자는 없었으나 베스코보는 두개골 3곳이 부러져서 100바늘을 기우고 집중치료실에서 6주간을 보냈다. 조금씩은 회복되었으나 지금도 바른팔의 측면에는 감각이 없다. <그 때 사람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신을 차린 듯하다.>
프랫샤드로프의 베스코보의 선실에는 프랑스인 사진가 피에르 가로의 파도의 사진이 장식되어있었다. 책장에는 SF작품이 꽂혀있다. 프레샤드로프도 리미팅 팩터도 이안 M. 뱅크스(Iain Menzies Banks、1954년 2월 16일 - 2013년 6월 9일/소설가)의 칼쳐시리스에 나오는 의식을 가진 우주선에서 취한 이름이다.
소년기에 SF에 열중하였던 베스코보는 전투기를 조종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력검사에 떨어져서 스텐포드대학에서 항공우주설계를 배우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을 경제학과 정치학으로 바꾸어 그 이후 되돌아가기를 계속하였다. 월스트리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금융 일을 하고 탈라스에서 경영컨설던트를 하고 닷컴 버블(dot-com bubble)시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창업사에서 일했다. 1993년에서 2013년에는 미국 해군예비대의 정보원으로 근무하고 이탈리아, 나폴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사령부에서 세르비아에서의 전투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이나 페르시아만의 후방사령부에서도 일했다.
출처=잡지『 WIRED』일본어판 VOL.38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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