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기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집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지금 뭐하고 있니?”
“네, 꼭 봐야 할 드라마가 있어서 그거 기다리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스테파니야! 드라마를 보면 잠시 즐겁지만 아빠가 평생 두고 두고 기억에 남고 흐믓할 일을 하나 알려줄까?”
“네? 그게 뭔데요?”
“응, 저기 이웃집 브라운 할머니 댁 있잖니. 그 할머니가 집 앞 눈을 치우지 못해서 곤란을 겪으실 거야.
그러니 네가 가서 몰래 그 집 앞 눈을 다 치우고 오면 얼마나 좋겠니, 절대로 네가 했다는 것을 티내지 말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고 와 보렴. 그럼 네 마음이 어떤지 말이다.”
딸은 투덜 거리면서도 브라운 할머니 집 앞 눈을 다 치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 다음날 등굣길에 브라운 할머니네 집 앞을 지나다가, 할머니가 정문에서 깜짝 놀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그래도 ‘내가 했어요!’하고 말하지 않고 등교를 한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딸은 두고 두고 그 일(몰래 눈을 치워드린 일)을 생각하면서 흐믓해 했다.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고 좋은 기분은 영원히 갔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버어억, 버어억.
아파트 현관들 앞을 눈을 치우는 플라스틱 삽으로 긁어내는 소리다.
조용한 이 밤에 관리소 아저씨가 혼자서 조용히 눈을 치우고 있는 소리다. 창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았다. 고요한 밤이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하얀 털옷을 휘두른 모습이다. 세상을 온통 하얀 눈이 소복하게 감싸 안았다. 눈을 치우는 분의 모든 동작이 의연하고 겸손하게 느껴진다.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일 아침이 되면 아파트방송이 나올 것이다. 눈치우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고. 관리소 직원분들이 하기에는 많은 양이다. ‘내 집앞 눈은 내가 치웁시다. ’ 이런 슬로건을 내걸어도 눈치우기는 아저씨들의 몫이기 십상이다. 그들은 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