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맞으며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다.
봄비가 내려 겨우내 땅속 깊이 잠든 뿌리를 뒤흔들어 일깨워서 새로운 생명의 움을 틔우기 시작했다.
지금쯤 시골 양지바른 길가에는 노란 민들레가 피어나고, 길가 돌 틈으로는 수줍은 듯 보라색의 오랑캐꽃이 고개를 내밀어 대지가 크게 숨을 쉰다. 산야 양달에는 등 굽은 할미꽃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려 하고 있다.
닭 울고 개 짖는 동네마다 개나리가 노랗게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이 시골집 울타리를 덮으며, 머지 않아 연분홍 진달래가 산야를 덮으리라. 어느 날 연삼로에는 헐벗은 나뭇가지에 하얀 벚꽃이 활짝 피어 나를 놀라게 할 것이다.
또한 머지않아 가지만 앙상했던 나무들은 움트기 시작한 싹들로 연두색 새 옷을 입게 되리라.
이제 자연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계절의 문턱에 선 것이다. 바야흐로 삼라만상이 소생의 기쁨을 대합창으로 노래하는 화려한 계절이 온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내 가슴에도 생기가 돌아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자연은 계절의 변화를 가져와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있는데 난들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계절의 변화처럼 나도 새로워져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오늘을 보내고 나면 4월이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하고 노래했다. 엘리엇은 새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던 만물들은 잠에서 깨어나 활기가 되살아나 재생과 부활의 기쁨을 구가하건만, 오직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현대 문명은 황폐화하여 비록 4월의 새 봄이 오더라도 결코 새로운 생명을 피워낼 수 없어 마치 희망 없는 황무지와 같아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비관적으로 노래하였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자연과학의 힘만을 과신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문물에 매료되어서, 마치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여 무엇이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는가. 한 겨울에도 따뜻이 난방을 하고 있으니 언제 봄이 오는지 알 수가 없으며, 냉방 속에 있으니 더운 여름임을 어찌 알겠느냐. 하우스 재배기술의 발달은 철을 가리지 않고 채소와 과일을 시장에 내놓고 있으니 제철의 과일을 분간할 수 없지 않은가. 이처럼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너무나 둔감하다. 자연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경이롭게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 가치를 높이 부여하려 하지 않지 않았는가.
4월이 오면 하루쯤은 과학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를 훌훌 벗어버리고 산으로 나아가 자연 속에서 대지가 숨 쉬고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들으며 온갖 꽃들이 미용을 다투는 가운데서 한껏 방탕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지내보는 것도 좋지 않으랴.
4월은 목소리가 쉬게 되는 소년들과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고 함박웃음을 지어내는 소녀들, 이들 질풍노도의 세대들 것이라 하지만, 나도 이 4월을 맞으며 소년 소녀 같은 철없는 감동과 낭만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자연은 인간에게 만고에 변하지 않는 스승이다.
높고 높은 저 하늘과 넓고 넓은 이 대지는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삼라만상을 길러내고, 변화하면서 인간들에게 자연에 순응할 것을 가르쳐왔다. 우리는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 되면 곡식을 거두어들여야 하며, 철 따라 맛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 왔다. 또한 자연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통하여 심오한 학문과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장자는 “천지자연에 통하는 것이 덕이다.”라 했다. 곧 천지자연의 순환이나 이치에 따라 통하는 것이 덕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어찌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 견디어 낼 수가 있으랴.
나는 4월을 맞으면서 새삼스럽게 자연이 아름다운 이 고장에서 사는 것을 한없는 축복이라 생각하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연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계절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만큼 우리의 생활에 변화를 가하여 달라짐을 실감하는 생활이 되게 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내가 비록 소년 소녀가 아니더라도 낭만이 넘치는 달이 되기를 바란다. 추억과 욕망의 뒤섞임 속에서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길가에 피는 꽃과 대화를 나누며 메말라 가는 나의 가슴에 윤기를 들여 서정이 풍부해지기 바라며,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지성이 새롭게 성숙하기를 바라고, 봄비를 맞아 굳은 땅을 헤치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신체적으로 충일하기를 바란다.
일 년 내내 4월이 주는 감동을 지니고 자연이 날마다 변하듯이 나 또한 바람직하게 변하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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