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휴지를 보고 미소 짓는 판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그저 휴지더미라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작품이다. 할머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쥘 때마다 그 손끝이 섬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전 한복을 만들던 때처럼, 그녀는 작은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휴지를 펼치고 접고, 가로와 세로를 잰 듯 반듯하게 정리한다. 그 결과물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차곡차곡 들어가고, 때로는 윗도리 속까지 침투한다.
어디에 두루마리 휴지가 보이면 손이 저절로 가는 그 손길, 마치 오랜 세월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차곡차곡, 꼼꼼하게 접고 또 접는다. 그렇게 접힌 휴지들은 윗도리 주머니에, 바지 주머니에, 심지어 워커 손잡이 옆에도 꽉꽉 들어찬다. 모든 종이 하나하나가 정확히 각을 맞추고 꼭 들어맞아야 한다. 만지작거리는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그 정성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워커를 의지한 할머니가 천천히 한 걸음씩 걸으며 요양원의 복도를 지날 때마다, 스치는 사람들은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워커를 의지해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는 언제나 그곳에 걸려 있는 두루마리 휴지에 눈이 멈춘다. 손이 간질간질하다는 듯, 무심결에 다시 손길이 닿고 만다. 휴지와의 끝없는 작별 인사는 항상 아침에 요양보호사들이 나서야 끝이 난다. 침대와 벽 사이의 틈새에 쌓인 휴지더미는 소소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할머니의 옷에서 떨어진 단추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녀는 여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추가 떨어져 채우지 못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옷 색깔에 맞춤처럼 붉은 단추 다섯 개를 가져와, 한 땀 한 땀 조끼에 단추를 달았다. 작은 일이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안심과 감사로 가득 찼다. 새로 매일 즐겨 입는 쉐타의 단추를 채우며, 마치 오래 잊었던 일상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어느 날, 그녀가 식사 후 앞치마를 가지런히 접는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미소 지었다. 그 누구도 그렇게 깔끔하게 접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종이, 천, 앞치마, 조끼의 단추까지, 그녀의 손길은 질서와 소소한 기쁨을 만든다. 종이를 접고, 천을 접는 데에 집착하는 치매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에 담담한 애정을 담고 있다. 그녀의 일거리는 단순히 손이 바쁜 것을 넘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작은 위로의 순간이다.
두루마리 휴지가 쌓여가는 작은 손길은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치매 할머니의 삶 그 자체다. 그녀는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기억과 숙련된 기술이 스며들어 있다. 그녀의 손끝이 천천히 휴지를 접는 동안, 그 종이 조각들은 어쩌면 지난날 포목점에서 꼼꼼히 바느질하던 시간으로의 짧은 여행이 된다. 정교하고 반듯하게 접어 놓은 휴지들은 그녀만의 규칙과 질서를 만든다. 이 규칙은 요양원의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할머니만의 독특한 리듬이다.
귀여운 판다 모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할머니는, 꼭 필요한 앞치마도 예외 없이 가지런히 접는다. 마치 그 작은 행동 하나로 무언가를 지켜내려는 듯. 혹여나 모서리가 삐뚤어지는 것을 본다면, 곧바로 다시 펼쳐내고 맞추는 모습이 참 진지하다. 휴지더미가 침대 주변에 널브러져 있어도, 할머니는 무심하게 흘려보낸다. 그곳은 그녀의 ‘미처 못 접은 휴지의 낙원’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요양보호사들이 이 휴지더미를 치워도, 그들은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는다. 알기 때문이다. 이 작은 종이들을 접는 행위가 할머니의 손끝을 통해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려는 시도라는 것을.
요양원의 일상은 느리지만, 할머니의 손은 항상 분주하다. 워커를 짚고 천천히 화장실로 가는 길에도, 그 두루마리 휴지가 시야에 들어오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럴 때면 아마도 과거 길쌈으로 아이들을 키우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실로 짠 조끼나 스웨터를 고집하는 것도 그 속주머니를 탐내는 이유가 크다. 단추가 떨어진 조끼는 할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언제라도 잠글 수 있어야 하기에. 그 빨간 단추들이 달리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안심한다. 단추를 여미고 나서 미소 짓는 얼굴은 오랜 시간을 넘어 다시 어머니로서의 든든함을 되찾은 듯하다.
요양원의 일상은 때로 반복적이고 단조롭지만, 그 속에서 작은 기쁨과 안도감이 존재한다. 아무도 그녀의 작은 종이 접기 소일거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조용한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삶의 마지막 단추를 꼭 여미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돈된 휴지 한 장에, 여전히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고집스러운 생의 흔적이 담겨 있다.
■ 인간의 손끝 감각에 대한 이야기
손끝은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감각을 가진 부위 중 하나로, **촉각**의 정밀성과 섬세함을 담당합니다. 이 감각 덕분에 우리는 물체의 형태, 질감, 온도, 압력, 진동 등을 인식할 수 있죠. 특히 손가락 끝에는 **메카노리셉터**(촉각 수용기)라는 특수 신경세포가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합니다.
■ 손끝 감각의 주요 기능
1. 형태와 질감의 인식:
눈을 감고도 손끝으로 물체의 형태와 표면 상태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과 종이의 차이를 손끝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죠.
2. 세밀한 작업 능력:
손끝 감각은 정밀한 작업에서 필수적입니다. 피아노 연주, 그림 그리기, 글씨 쓰기 같은 예술적·기술적 작업들은 손의 민감한 촉각 덕분에 가능합니다.
3. 위험 감지:
손끝은 뜨거운 물체나 날카로운 물체를 즉각적으로 감지하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4. 촉각 기억:
손끝 감각은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촉각적 기억을 형성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 재질이나 구조물을 손끝으로 익히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 과학적 원리
- 손가락 끝에는 **파치니 소체**, **마이스너 소체**, **루피니 소체** 등 다양한 촉각 수용기가 있습니다.
- 파치니 소체는 진동을 감지하고,
- 마이스너 소체는 가벼운 접촉과 미세한 변화에 민감하며,
- 루피니 소체는 피부의 늘어남과 같은 깊은 압력을 감지합니다.
이 수용기들은 신경 신호를 통해 뇌로 자극을 전달하며, 뇌는 이를 해석해 감각 경험으로 변환합니다.
■ 철학적 시각
손끝 감각은 단순히 물리적 자극을 느끼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는 손끝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감각적 인식은 때로 감정이나 기억과 깊이 연결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드러운 천을 만졌을 때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거나, 특정 질감이 불편함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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