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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단상

접근과 괴리의 갈등 속에서

간천(澗泉) naganchun 2009. 7. 31. 04:27

 

접근과 괴리의 갈등 속에서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를 거의 날마다 듣는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목탁 소리도 들린다. 예전에 새벽에 늘 듣던 교회의 종소리는 언제부터 들리지 않게 되었는지 지금은 교회의 종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이럴 때면 잠시 익숙한 교회의 종소리에다 어릴 때 시골 절간에서 들려오던 종소리, 여로에서 들은 불국사의 저녁 종소리를 연상해 본다.

하나는 불현듯 깊은 잠을 깨우듯 떠들썩하게 들리고, 하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안타까이 마지못하여 타일러 깨우듯 은근하게 들리는 소리라 하겠다. 하나를 재빠르게 변모하는 현대와 같이 호흡하는 사람의 발랄한 행동이라 하면, 하나는 보수성이 강하고 품 넓은 옷을 입은 한국 전통적인 양반의 점잖은 모습에 비유해 본다.

 

봄철쯤 하여 만상이 봄잠에 곤히 잠들어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새벽, 목탁 소리와 어울려 스님의 독경 소리마저 들리는듯하여 잠시나마 명상에 잠기고 그 날의 일들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예전에 듣던 교회의 종소리에는 그 다음에 들리는 성가의 멜로디가 들리는듯하여 어쩐지 함께 노래를 부르게 했었다. 하나는 명상의 내면세계로 하나는 행동의 표면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목탁 소리를 못 듣게 되었다. 공지가 많은 개발 지역에 아파트 건물이 고래 등같이 접근하여 그 소리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주택 건조물의 접근은 나를 명상의 좋은 순간에서 괴리시키고 말았다.

 

양복점에서의 일이었다. 옷 치수를 다 재고 나서 재단사의 얘기가 “당신의 몸은 기형적이다.”라는 것이다. 팔이 보통 사람보다 한 치는 더 길고, 체격에 비해서 어깨가 굉장히 넓으니 문제는 어깨에 넣는 솜뭉치를 어깨 뒤쪽으로 대어야 하겠다는 친절한 얘기다.

 

라마르크의 사용폐용설처럼, 그럴 수밖에. 어려서부터 바른 손으로 밥을 떠먹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고, 어머니의 손에 끌리어 대도시의 시장을 돌아다녔고, 좀 자라서는 바른 팔만을 주로 쓰는 그것도 격심히 써서 저녁이면 팔이 통통 부을 정도의 일을 했으니 저절로 자라나면서 자꾸 사용되는 바른 팔이 길어지고, 성장 과정에 인체의 대칭을 이루려 하니 경쟁하던 왼 팔도 거의 비슷하게 길어지지 않았으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높은 칠판에 매달려 글씨랍시고 써야 했으니 팔과 어깨가 그렇게 발달된 것이리라.

 

아마도 내 성장 발육기간이 십 년만 연장되었다고 하면 내 체격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으리라. 다리는 짧고, 팔은 매우 길어서 육 척 평방의 방 한가운데 정좌하고서 창문을 여닫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상상해 볼수록 망측한 몰골, 마치 콜리라나 진팬지를 닮았을 것이다. 왜소한 몸에 팔(손)만이 발달된 인간, 소위 호모파버,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 공작인으로서 손만을 쓰다 보니 곧 사물과의 부단한 접근 때문에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사유하는 본바탕과는 괴리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 아닐까 ?

 

실로 우리의 주변에는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다종다양한 문명의 기기와 접근해야 하며,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많은 매체에 접근해야 하며, 위압적이며 생소한 대중군과 접근해야 한다. 밥그릇에서부터 자동차, 비행기, 자동판매기, 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효용이 고도화된 문명의 기기들에 익숙하게 접근할 수 있을수록 문명인이요, 시청각은 물론, 여타의 감각으로도 정확하고 섬세하게 매체를 식별하고 붙잡을 수 있을수록 문화인이고, 장소와 대중이 어떻든 대중의 인기를 모아 울리고 웃기고 할 수 있을수록 영웅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의의 있는 삶이란 ? 회의. 회의. 밤마다 얄궂은 꿈, 꿈의 연일이다. 기기에의 접근으로 심층의 근본적 사고를 외면한 로봇이 되고, 여러 매체에의 무비판적인 접근으로 쾌락주의, 향락주의의 인간을 낳게 하고, 대중과의 접근은 인기 만능으로 본질을 소외시하고 아니면 심한 강박관념, 피해망상, 노이로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주변에서 무한수의 불가항력적으로 접근을 강요당하면서 인간의 본래의 모습과는 괴리를 면치 못하게 하는 접근과 괴리, 자가당착의 모순의 시대. 이제 절간의 종소리, 목탁소리는 듣기 힘들게 되었다. 교회의 종소리를 연상하며 현대적인 목탁의 소리를 추상해 보련다. 아니 절간의 종소리, 목탁소리가 주는 분위기가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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