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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13화. 당신은 도를 깨쳤소(외편 천운)

간천(澗泉) naganchun 2009. 7. 24. 05:22

 

제13화. 당신은 도를 깨쳤소(외편 천운) 

 

어느 날 공자가 노자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의 육경을 연구한지 매우 오래 되어서 제 나름으로는 그 내용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72제후들에게 채용해주기를 바라고 선왕의 도를 논하고 주공(周公), 소공(召公)의 업적을 밝혔으나, 한 사람의 제후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남을 설득시키기가 어렵고 도는 밝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에 노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당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제후들에게 채용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오. 육경이란 것은 선왕들이 밟아온 낡은 발자취에 지나지 않고, 근본인 도는 아니요. 지금 당신이 말하는 바는 낡은 발자취를 말하는 것이오. 발자취는 신발이 만드는 것으로 신발 그 자체는 아니오. 대체로 백로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바라보면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응시할 뿐으로 자연히 암놈이 새끼를 가지게 되는 것이요, 또 벌레는 수놈이 바람 위에서 울고 암놈은 바람 아래에서 이에 응하기만 하면 자연히 새끼를 갖게 되는 것이오. 유라는 짐승은 한 몸에 양성을 가졌기 때문에 혼자서 새끼를 가지게 되는 것이오. 만물은 제각각 종에 따라서 도가 있어 자연으로 정해진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며, 시간은 멈추게 할 수 없으며, 도는 막을 수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진실로 도를 얻었다면 스스로 옳지 않은 것이 없고, 도를 잃으면 스스로 옳은 것이 없소.”

 

  이처럼 노자에게서 깨우침을 받은 공자는 삼개월동안 두문불출하여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가 간신히 깨달은 바가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노자를 만나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마침내 도를 깨달았습니다. 저 까마귀와 까치는 교미를 하여 낳은 알에서 새끼를 낳고, 물고기는 거품을 내어 축여서 새끼를 낳으며, 벌은 뽕나무 벌레를 가져다가 제 새끼로 삼으며, 인간은 여자가 둘째 아이를 가지면 젖이 멎으므로 형은 웁니다. 이처럼 만물은 제각각이 자연의 도가 있어서 인위로써는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오랜 동안 조화의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조화의 자연과 함께 하지 못하고서 어찌 남을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많은 제후들을 만나서 주장을 폈지만 한 사람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자는 빙그레 웃으며

“되었소. 당신은 도를 깨쳤소.” 하고 말하였다.(외편 천운)

 

  앞에서 ‘도를 깨닫는 이야기’ 두 대목을 보았는데, 공자의 《논어》이인편(里仁篇)에 공자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할 만큼 도를 깨닫는 것이 죽음보다도 중하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러면 과연 공자는 언제 도를 깨쳤을까? 그런데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는 “예순 살에 무엇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六十而耳順)”는 말이 있는데, 만일 도가가 이 말을 풀이한다면 “예순 살에 이이(李耳=노자)의 말에 순종할 수 있었다.”고 풀이하게 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공자는 예순이 되어서 도를 들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장자의 창작으로서 장자는 철저히 공자를 노자에 의하여 무위자연의 도를 깨친 사람으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