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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의 고전/장자 이야기 백 가지

제15화. 도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외편 지북유)

간천(澗泉) naganchun 2009. 7. 26. 09:13

 

제15화. 도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외편 지북유)

 

  어느 날 공자가 노자의 한가한 틈을 타서 찾아뵙고 지대한 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노자는 반가운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그래요. 그 도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재계하여 당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정신을 말끔히 씻어내고, 당신의 지식이나 분별력을 없애야 하오. 도라는 것은 으슥하고 멀고 깊어서 말로는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오. 그러나 이제 당신을 위하여 그 대강을 말해보겠소. 대체로 분명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 어두워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기는 법이요, 형체가 있어서 분별할 수 있는 것이란 형체가 없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며, 사람의 정신은 자연의 도에서 생기고, 육체는 남녀 음양의 화합에서 생기는 것이오. 또 만물은 형체에서 형체를 낳는 것이오. 그런 까닭에 몸에 아홉 구멍을 가진 사람이나 짐승 같은 것은 태에서 생기고, 여덟 구멍을 가진 새나 물고기 같은 것은 알에서 생기지만, 그것들이 생겨나는 자취는 없고, 죽어서도 어디로 가는지 끝을 알 수가 없는 것이오. 출입할 문도 없고 머무를 방도 없으며 사방으로 통달하여 막힘이 없이 크고 넓기만 하오.

 

  이와 같이 크고 넓으며 지극한 도에 순응하는 자는 사지가 굳세고 생각이 활달하며, 눈과 귀가 밝아서 마음을 써도 피로하지 않고, 사물을 대해도 마음대로 융통되는 것이오. 하늘도 이 도를 얻지 못하면 높지 않고, 땅도 이 도를 얻지 못하면 넓지 않으며, 해와 달도 이 도를 얻지 못하면 운행할 수 없고, 만물도 이 도를 얻지 못하면 번창할 수가 없는 것이오. 이것이 곧 도라는 것이오.

 

  도의 한없이 크고 넓음은 어떠한 박식함으로써도 알아낼 수가 없고, 어떠한 능변으로도 밝혀낼 수가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성인들은 이런 것을 내버려서 쓰려고 하지 않소. 박식함이나 능변으로 손해를 보거나 이익이 되거나 늘거나 줄거나 하지 않는 도야말로 성인이 지키는 것이오. 군자의 도라는 것도 이와 같아서 깊은 바다처럼, 아득히 높은 산처럼 만물을 싣고도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곧 자연을 터득한 군자의 도인 것이오. 그 도는 밖에서 구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오. 만물은 모두 이 도를 따라 만물을 만물답게 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 곧 도라는 것이오.

 

  나라 안에 있어서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도 음양을 초월하고, 생사를 망각하고, 잠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침내는 생겨나기 이전의 자연의 도에 돌아가는 것이오. 만물의 근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삶이란 한때의 기의 모임에 지나지 않은 것이오. 비록 사람에게 장수하고 요절하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소. 그런데 어찌 요(堯)나 걸(桀)을 옳다 그르다 할 것이 있겠소. 그것은 무한한 세월에 비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지 않소,

 

  나무의 열매나 풀의 열매에도 자연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고, 인간이 살아가는 길도 번잡하기는 하여도 그 나름의 자연의 질서가 있소. 성인은 항상 부딪는 일에 순응하여 거스르지 않고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어떠한 일에도 집착하지 않소. 자연의 운행과 조화되면서 닥치는 대로 무심하게 순응하는 것이 지극한 도인 것이오. 따라서 제왕이 업적도 이 도에서 생겨나는 것이오.

 

  사람이 이 천지 사이에서 살아 있는 시간이란 준마가 달리는 것을 벽 틈으로 보는듯한 순간의 일이오. 사물은 모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났다가 다시 변화에 따라서 죽는 것이오. 변화하여 생겨나는가 하면 다시 변화하여 죽는 것이오. 이것을 생물이나 인간은 애달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오. 그러나 죽음이란 활집이나 옷 주머니를 끄르듯이 하늘에서 받은 형체를 떠나 육체가 산산이 흩어지고, 정신이 이 형체를 떠나려 할 때 몸도 이와 함께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곧 도에로의 훌륭한 복귀인 것이오.

 

  또 무형에서 유형이 생기고, 유형이 무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이며, 도에 이르려는 자는 그것을 알려고 애를 써도 알 수 없고 밝히려 해도 밝힐 수 없는 것이오. 차라리 말로 하기보다는 침묵을 지켜 깨닫게 해야 하오. 도란 귀로 들을 수 없으니 귀를 막고 몸으로 터득하는 것만 못하오. 이와 같은 것을 자연의 대도와 하나가 되는 대득(大得)이라 하는 것이오.“(외편 지북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