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샘, 멘토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학생들이 자주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을 하고 계신 아버지를 뵈러 졸업하여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좋은 일자리에 취직을 하고 나서 인사를 드리러 오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 중에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아버지를 찾아뵈는 분들도 있었다. 그 분들은 우리 형제를 보고 동생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인지 형제들과 가족들 먹기에도 없는 반찬에 그 찾아오는 제자들 대접하는 것에 대해 조금 못마땅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융숭하게 대접하지도 못했건만 어린 마음에 우리와는 다른 대상에게 부모님이 정성을 쏟는 모습에 질투심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삶이어야 함을 잘 몰랐다.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참스승과 제자 사이를 자꾸 떼어놓은 것 같다.
누군가를 기꺼이 반기며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스승님이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처럼 말이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도 그 수많은 꽃 중에서 어버이날에 드리는 ‘카네이션’을 고마움의 표시로 드리는 것인가 보다. 제2의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언제부턴가의 그 시절부터 지금 현재까지 그리고 그 언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끊어지지 않는 끈이다. 혼불처럼 말이다.
샘(선생님의 줄인 표현). 샘은 스승이라는 관문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 지금 현재의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현재를 잘 돌보지 않고서는 샘에서 스승으로 거듭날 수 없다. 수많은 샘들이 오늘도 아이들과 하루의 주어진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높고 높은 하늘처럼 우러러만 봐야 하는 존재에서 가까이 눈높이로 낮추는 느낌일지라도 그렇게 선생님들은 아이들 근처에서 아이들을 알아가고 싶어하고 좋은 길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한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유치원에서 박물관 견학을 가기로 했단다. 견학 이전에 사전 답사를 해야 했다. 원장님이 직접 그 곳을 방문하여 일일이 둘러보았다. 박물관을 지키는 수위는 놀랐다. 한참을 무릎을 꿇은 채로 박물관 곳곳을 세심하게 둘러보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 했다. 원장님, 어째 그렇게 힘들게 무릎을 꾾고 다니십니까? 이곳을 견학할 우리 아이들은 키가 이 정도에요(손으로 바닥에서 높이를 가리키면서). 그래서 그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알아야 견학지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라고 했단다.
성가시고 신경질적이고 경쟁적이고 빨리 빨리 외치고 서두르고 높아지려고 하고 어수선하고 혼돈스럽고 징그럽고 각박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스승님과 스승으로 나아가는 샘들이 삶의 정신적 지주인 ‘멘토(mentor)의 혼불을 머리에 달고 있어서 밝고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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