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창신 溫故創新 ongochangsin

단상 7

6월이 오면

유월이 오면 유월은 방금 사우나를 마치고 화장을 하고 나온 만삭의 여인이다. 환희에 찬 미래를 분만하며 유월은 온다. 새들은 숲속 새벽의 어둠 속에서부터 사랑의 노래를 합창하고, 풀벌레들도 서로 짝을 맞추기 한창이다. 들판에는 이름 없는 작은 꽃들마저 제각기 꽃을 피워 미래를 잉태하려 애를 쓰고, 논밭에는 벼 폭이 짝짝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 나무는 나무들대로 풀은 풀들대로 제 몸피를 늘리며 서로 이웃하는 친구들과 정다운 악수를 하려 몸부림친다. 산과 들이 푸르름으로 가득해 지는 녹음의 계절로 내닫고 있다. 나에게는 1년 중 유월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새봄이 되어 3월부터 6월까지 내 몸은 생기를 찾아 활기가 솟아나고 머리는 명석해져서 생각하는 데에 피곤을 모르는데, 특히 6월이 되면 완전히 털갈이를 ..

단상/월요단상 2021.05.30

스승과 제자의 길

스승과 제자의 길 내일 5월 15일은 이다. 일찍이 우리는 이 날을 스승의 날이라고 정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그 참 모습을 생각해 보는 날로 삼아 왔다. 스승과 제자라고 하면 중국의 속설에 “경사이득이나 인사 난득이니라.”(經師易得,人師難得)라는 말이 있다. 곧 “글(재주)를 가르치는 스승은 얻기 쉬우나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은 얻기 어렵다”란 말이다. ‘경사’란 글이나 재주를 가르치는 선생을 말하고 ‘인사’란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하는 스승을 말한다. 이에 요즘은 “학생은 많으나 제자는 없고,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란 말이 생겨났다. 사실 초, 중, 고등학생은 누구나 한두 가지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이 없다고 한다. 이 학원이란 전형적인 경사로서 글이나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주목적이..

단상/단상 2021.05.14

땅 도는 대로 돈다

땅 도는 대로 돈다 20여 년간 내가 운동 삼아 다니는 길이 있다. 이곳은 한 바퀴를 도는데 700미터 쯤 되고 시간은 8분 정도 걸린다. 내가 5시 반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걷는 곳으로 영산홍 아파트 단지와 혜성 아파트 단지 사이의 산지천 천변이다. 강변 양쪽으로는 이른 봄에는 벚꽃이 피고 겨울에는 동백꽃이 핀다. 5월에는 신록이 피어나 연두색 꽃밭을 이루며 6월이 되면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강변으로 가지를 늘어뜨린다. 물이 흐르는 강변이라면 강물 위에 멋진 그림자를 낳으리라. 그러나 물은 흐르지 않는 강이라 아쉬움이 한이 없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소음이 없으며 또한 매연도 없어 산책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시청에서 산책로로 고무판 블록을 깔아서 걷기 운동에는 이보다 더..

단상/단상 2021.05.05

쥘 때와 펼 때

쥘 때와 펼 때 아프리카의 원 주민 들은 원숭이를 사로잡는 기막힌 기법을 알고 있다고 한다. 나무 밑 둥에다 손이 간신이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이나,밤 등을 넣어 두는 것이 원숭이 생포 작전의 전부 라고 한다.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슬그머니 다가가 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그 속에 든 먹이를 한 움큼 쥐지만, 손을 움켜쥔 상태 에서는 구멍에서 손을 빼 낼 수가 없다. 손을 펴서 먹을 음식을 포기하기만 하면 쉽게 구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있어 잡히지 않을 것이지만 원숭이는 그걸 포기하지 않고 쩔쩔 매다가 그만 자신의 몸 전체를 인간에게 헌납하고 마는 것이다. 만 알고 을 몰라 자기 욕심의 회생양이 되는 것이 어디 원숭이 뿐이겠는가. 세상사의 모든 비극이 쥘 때와..

단상/단상 2021.04.09

못난 놈은 잘난 놈의 밥이니라

못난 놈은 잘난 놈의 밥이니라 내가 어릴 적에 집안 할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못난 놈은 잘난 놈의 밥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못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훈육하셨다. ‘잘난 사람’은 무엇이며 ‘못난 사람’은 무엇인가? 원래 사람은 평등하여서 잘나고 못났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은 권력을 잡거나 부를 이루거나 인기를 모아 세력을 가지거나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곧 소위 유능한 사람과 무능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니 전자는 잘난 사람이고 후자는 못난 사람일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옛날 윗동네와 아랫동네에 두 농부가 살았는데, 여름 한 철 고구마를 가꾸어서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하였다가 겨울이 되면 시장에 내놓고 팔았다. 그런데 윗동네 농부는 고..

단상/단상 2021.01.09

농촌 계몽활동의 추억

농촌 계몽활동의 추억 지금은 우리나라가 GDP 33,434달러로 세계 9번째(2019년 한국은행자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우리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농촌 계몽활동을 했던 1950년대 우리나라는 인구의 8할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이었으나 농촌은 매우 피폐하였다. 학자의 연구(김종덕)에 의하면, 식량 자급률은 50%가 안 되었고 농가 호당 부채는 300만 원 정도이며 소작농이 전 농가의 50%를 차지한다고 했다. 특히나 제주도의 경우 농토가 협소하고 척박하다. 그런 중에도 나의 고향은 더 심각했다. 한편 초등학교 취학률은 96% 정도에 이르지만, 중학교 진학률은 60%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당시 자라나는 농촌의 청소년들은 어떠했는가? 빈한한 생활에..

단상/단상 2021.01.07

어느 아버지의 유언 ‘터럭, 터럭’

어느 아버지의 유언 ‘터럭, 터럭’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는 해방이 되어 1년밖에 안 되는 시기라서 물자는 귀하여 구하기 어렵고 매우 살기가 힘든 세상이었다. 신발이 귀해서 자동차 타이어를 오려내어서 재래의 짚신 모양으로 만든 신발을 사다 신기도 하였다. 그러나 맨발로 신을 경우에는 발등이 벗겨지고 발이 아파서 신기에 매우 불편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짚신을 삼으시는데 나로 하여금 조리(草履)를 삼게 하셨다. 아버지는 매우 곱게 짚신을 삼아서 신곤 하셨다. 짚신을 곱게 삼으려면 먼저 재료인 짚을 잘 다루어야 한다. 여름에 ‘미’라고 하는 꽃이 피기 전의 참갈대 송이를 뽑아다가 그 껍질을 가늘게 오려서 ‘덩드렁돌’(짚을 다루기 위하여 망치(마께)로 두들기는 밑돌로서 힘센 ..

단상/단상 202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