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5/5)
==유명한 화가이면서 해부학, 기하학 등 많은 연구를 하였다.==
5, 사생활
레오나르도는 평생 동안 비범한 창의력을 발휘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를 <탁월한 신체미>, <헤아릴 수 없는 우아함>, <강인한 정신력과 큰 관용>, <위엄 있는 정신과 놀라운 지성>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며, 레오나르도가 모든 면에서 사람을 매료시키는 인물이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채식주의자였으며, 새장을 사서 그 안의 새를 풀어주곤 하는 등 생명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근대 회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는 1490년대에 레오나르도와 함께 수학 논문을 저술했다. 페라라 공작 에르콜레 1세 데스테의 딸이자 만토바 후작부인 이사벨라와 밀라노 공작부인 베아트리체의 자매를 제외하면, 레오나르도와 가까웠던 여성은 전해지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만토바에 머무르는 동안 이사벨라의 초상화 습작을 그렸으며, 이 습작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랫동안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2013년 10월, 스위스 은행의 귀중품 보관소에서 채색된 초상화가 발견되어 당국에 의해 압수되었다. 레오나르도 연구가인 페드레티 교수의 감정에 따르면, 이는 거의 확실하게 레오나르도의 진품으로 보인다.(위키페디아)
6, 교우관계
다빈치의 사생활은 교우 관계 외에는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특히 그의 성적 지향은 다양한 암시, 연구, 추측의 대상이 되어 왔다. 다빈치의 성적 지향이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16세기 중반이었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도 이 주제가 다뤄졌으며,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독일어: Sigmund Freud、1856-1939,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정신과의사, 신경병리학자)가 제기한 이론이 유명하다. 다빈치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아마도 그의 제자였던 살라이와 멜치일 것이다. 멜치는 다빈치의 사망 소식을 그의 형제에게 알린 인물로, 그 편지에는 다빈치가 자신들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했는지가 쓰여 있었다. 16세기에는 이러한 다빈치의 인간관계가 성적인 것이었다는 설이 등장했다.
1476년 피렌체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24세였던 다빈치를 포함한 네 명의 젊은이가 유명한 남창과의 다툼으로 인해 동성애 혐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무죄로 풀려났지만, 피고인 중 한 명인 리오날데 데 토르나부오니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메디치 가문이 압력을 가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이 기록은 다빈치가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그의 그림 <세례자 성 요한>이나 <바쿠스>, 그리고 다른 많은 소묘에서 양성적인 성애 표현이 나타난다는 연구자들도 있다.(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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