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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자

22,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4/5)

간천(澗泉) naganchun 2024. 11. 12. 02:59

22,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 (4/5)

==유명한 화가이면서 해부학, 기하학 등 많은 연구를 하였다.==

 

 

4, 사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16년에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수아 1세의 거성인 앙부아즈 성 근처의 클로 뤼세 저택을 거처로 제공받았다. 레오나르도는 사망하기 전까지 마지막 3년을 그의 제자인 밀라노 귀족 프란체스코 멜치( Francesco Melzi, 14911570, 이탈리아의 화가)등과 함께 보냈다. 레오나르도가 프랑수아 1세로부터 받은 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총 10,000 스쿠도(16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사용한 은화 단위)에 달했다.

 

레오나르도는 151952일 클로 뤼세 저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67세였다.

그는 프랑수아 1세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바사리도 그의 저서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수아 1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아 도미니크 앵그르, 프랑수아 기욤 메나고 등이 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렸고, 오스트리아 화가 안젤리카 카우프만도 비슷한 그림을 제작했으나, 이 이야기는 사실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마지막 며칠을 사제와 함께 지내며 고백을 하고 임종 성사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레오나르도의 유언에 따라 60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의 장례 행렬에 참여했다. 프란체스코 멜치는 레오나르도의 주요 상속인 겸 유언 집행자로서, 레오나르도의 금전적 유산뿐만 아니라 그림, 도구, 장서, 개인 소지품 등을 상속받았다. 또한, 오랜 제자이자 친구였던 살라이와 하인 바티스타 디 빌루시스에게 자신이 소유했던 포도밭을 절반씩 남겼으며, 자신의 형제들에게는 토지를, 식사 담당 여성에게는 최고급 검은 망토를 유산으로 남겼다. 레오나르도의 유해는 앙부아즈 성의 생-위베르 예배당(영어 Chapel of Saint-Hubert)에 안장되었다.

 

레오나르도가 사망한 후 약 20년 뒤, 프랑수아 1세가 <과거 이 세상에 레오나르도만큼 뛰어난 인물이 있었을까. 그는 그림, 조각, 건축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뛰어난 철학자였다.>고 말한 것이 금세공사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화가, 금세공사, 조각가, 음악가)의 기록에 남아 있다.(위키페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