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유감
“가을 더위와 노인의 근력은 못 믿는다.”란 속담이 있다. 가을에 덥다고 해도 곧 서늘해 질 것이고 노인이 제 아무리 근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얼마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내자는 80대가 되어서 퇴행성관절염 등으로 오랜 치료를 받았지만 갑자기 10미터도 못가서 쉬어야 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걷는 데 도움을 주려면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팡이 짚기를 거북하게 생각하여 싫다고 한다. 자식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멋진 지팡이를 사드린다. 나 또한 가시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지팡이 짚고 걷도록 권하였다. 그러나 끝내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못 견디게 되어서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에게 지팡이는 어진 효자보다 더 낫다고 하지 않은가.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서 멀리 이동하는 것처럼 손쉬운 지팡이도 이것들처럼 이동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거북스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테베에 있는 높은 바위산에 ‘스핑크스’ 라는 괴물이 있었다. 이 ‘스핑크스’는 바위산을 지나가는 행인이 있으면 반드시 수수께끼를 내어, 그것을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 그 수수께끼는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수수께끼이다.
어느 날 이 산을 지나던 오이디프스에게 스핑크스는 이 수수께끼를 물었다. 오이디프스는 곧 “그것은 사람이다.”하고 답하자 스핑크스는 분하고 놀라서 그만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사람은 어려서는 손과 발로 기어 다녀야 하고, 자라서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어서 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팡이를 짚어서 걸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지팡이를 짚어서 걷고 싶으나 지팡이마저도 짚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지팡이를 짚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다. 지팡이를 짚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게 천수를 다한다는 뜻이다.
지팡이의 재질은 여러 가지이다. 나무, 플라스틱, 철, 상아나 금으로 만든 것도 있다고 한다. 목재로서는 옛날부터 명아주 줄기로 만든 청려장(靑藜杖)이 유명하다. 왕은 80세가 넘은 노인에게 이 청려장을 하사하였다 하며, 이 청려장은 그 효험이 신통해서 이것을 짚고 다니면 뇌졸중 같은 병은 걸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제주도지사를 역임하신 전인홍(全仁洪. 1901-1966) 지사는 40대 중반 쯤에 구좌면장이셨는데 세화리에서 평대리 면사무소에 출근하시고 우리들은 한동리에서 세화리 학교까지 등교 길에서 자주 만나서 인사를 하곤 하였다. 그 때 그 분은 지팡이를 짚고 두르면서 걷는 모습을 보며 멋지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이때 그는 40대 중년이었으니 걷기 보조 지팡이는 아니고 권위와 멋을 부리기 위한 지팡이였다고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지팡이는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걷기 보조로 쓰는 지팡이가 있는가 하면 등산용 지팡이, 종교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식용, 마술사의 마술 지팡이 등 용도에 따라 길이나 모양 재질 등도 제각기 다르다.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한 것은 신통력을 발휘하는 지팡이이다.
불가에서는 석장(錫杖)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머리에 방울이 달려서 움직이면 짤랑짤랑 소리가 나게 되어있다. 이 소리로 산행하는 스님을 야수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신통력을 발휘하여 액을 멀리하고 소원을 이루게도 하였다 한다.
6세기 중국 양나라 때 지공(誌公)이라는 중과 백학도인(白鶴道人)이 잠산(潛山)에 살고자 하여 그 터를 다투었다. 백학도인이 먼저 잠산에 들어가 살려고 하는데, 공중에서 석장이 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지공의 석장이 날아와 잠산에 꽂혀있었다. 그래서 백학도인은 그 마음에 드는 집터를 지공 스님에게 빼앗겼다. 고승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또 기독교에서는 모세의 지팡이가 유명하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따르면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라.”(출애굽기4;17) 또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애굽기 14;16)
이 지팡이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고 홍해 바다를 갈라놓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보행 보조로 쓰는 사람에게는 아들보다도 나은 의지가 된다고 하지만, 기왕이면 불가에서 말하는 석장이나 모세의 지팡이처럼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 지팡이를 짚으면 통증이 사라지고 활발히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팡이를 짚어도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내자가 짚는 지팡이에 이 신통력을 붙여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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