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철학자
지난 해 준비해 오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아버지는 지난 해 두 권의 책 원고를 준비하고 다듬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에게 감수를 받고 출판사를 알아보고 원고를 보내고 수정을 거듭하고 의견 조율을 하는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이윽고 올 해 초에 책은 세상에 나왔다.
그 동안 고통이었을 것이다.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문장을 다듬고 고치고, 출판사에게 수정을 알리고 보내고 편집이 이상하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아서 속않이를 하며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산고의 고통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몇 개월의 과정에서 워낙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는 책을 정확하게 제대로 잘 완성하고 싶은 생각에 ‘이명’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십 수권의 책을 냈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더욱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아버지는 철학자다. 최근 김형석 노교수의 인간극장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아버지와 겹쳐지는 인상을 더욱 확고히 했다. 국문학 전공자이지만 아버지 삶 자체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모습을 고루 담고 있는 큰 그릇이다.
아버지를 통해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석헌옹을 알고, 안병욱 교수를 알고 버트란트 러셀을 알았다. 그들과 그들의 생각과 삶 자체를 흠모했다. 그들이 집필한 책들과 생각들을 알리는 사상계라고 하는 전문잡지가 창간호부터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던 것이 눈에 선하다. 책들은 바스라지고 낡아 그 자체 안틱 소품 같다. 중후한 시간의 무게와 겹겹이 심층을 아우르는 고차원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그 책들은 모두 어느 도서관에 기증이 되어있다. 이런 아버지의 행적과 지적 스타일을 동경한다.
‘한 노인이 세상을 뜨면 거대한 도서관이 사라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노교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이 말은 나레이션으로 나왔다. 맞다. 꼭 유명한 노 철학자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모두 인간도서관이다. 인간 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미술관이나 스미소니언박물관 등보다도 뛰어난 살아있는 유산이다.
이 살아있는 유산이 또 책을 낼 예정으로 기획 탐구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철학자의 사상을 내용으로 엮을 생각이라고 한다. 매일 걷기 운동하고 소식하고 노래 부르고 사색하고 고민하고 글 쓰고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쉬지 않고 정진하는 의지로 고민하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 보려고 애를 쓰는 아버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코너에 진열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검색을 하면 ISBN 번호가 부여되고 국회 도서관에 ‘어엿하게’ 소장되어 있는 책들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면, 인류 후손들이 언젠가는 이 책들을 꺼내서 빛을 보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인류가 각자의 자리에서 차곡차곡 꾸준히 담담하게 기록하고 축적한 지식과 습관들이 모여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명이 되었듯이 말이다.
과학이나 문학처럼 글이나 데이터로 남겨지는 것과 달리, 생각이나 철학 등, 보이지 않고 쉽게 글로 정리할 수 없는 무형의 것, 시간이 지나면 형체도 없이 구전도 되지 않아 사라져버릴 것을 보여 지는 정형화된 문서의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이기에 특히 더더욱.
그래서 아버지 철학자의 작업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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