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위, 노르만디공 윌리암1세(1027년-1037년)
윌리암 1세(William I, 1027년- 1087년)는 노르만조( Norman dynasty)의 초대 잉글랜드왕(재위 1066년-1087년)이다.
현대의 영국에서는 위리암 정복왕이라 부르는 예가 많다. 또 서자왕(庶子王,William the Bastard)이라고도 부른다. 노르만디공(기욤2세 재위 1035년 1087년)이기도 하다.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노르만조를 열어서 현재의 영국왕실의 개조가 되었다.
윌리암은 영국식이지만 프랑스출신이고 그 자신도 주위의 사람들도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프랑스어 식으로 기욤(Guillaume)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는 견해도 있다.(위키페디아)
원 이름은 노르만디공 기욤 (Guillaume) 이다.
노르만디공 로베르1세의 서자로서 태어나 백부인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증성왕이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후계자로 지명되어 그 계승권을 주장하여 잉글랜드 제후들과 대결하여 최후로 헤스티그스의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왕 위리암1세로서 즉위하는 데에 성공했다.
윌리암1세는 잉글랜드왕이기도 하고 동시에 노르만디공으로서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노르만디가 당시 프랑스왕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윌리암1세는 프랑스왕에게는 신하이기도 하였다.
이 때를 영국사에서는 노르만디공에 의한 정복이라는 의미로 노르만콘퀘스트 (영: Norman Conquest) 라고 부르고 이 후 잉글랜드왕조를 노르만조라 부르게 되었다.
윌리암1세 자신도 영어를 말하지 못하였고 이후 잉글랜드왕에는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왕이 몇 명이 취임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의 의식이 프랑스인의 자의식에 크게 영향을 끼쳐서 프랑스인이 영어를 결코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노르만콩퀘스트의 영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 자의식은 미국에 절대로 추종하지 않는 프랑스로서 현대에도 프랑스인의 근저에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www.myworldhistory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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