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위, 니코라우스 코페르니크스(1473년-1543년)
니코라우스 코페르니크스(라텐어명 ; Nicolaus Copernicus、폴란드어명 ; 미코와이 코페르니크스. Pl-Mikołaj Kopernik.ogg Mikołaj Kopernik, 1473년 2월 19일-1543년 5월 24일)는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이다.
만년에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를 저술하고 당시 주류였던 지구중심설(천동설)을 뒤집는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제창했다. 이것은 천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한다.(단지 태양중심설을 처음 주창한 것은 기원전 3세기의 사모스 도 출신의 아리스타루코스(라텐어 ; Aristarchus、BC310년-BC230년,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수학자, 그리스 사모스도 출신)이다.
또 경제학에 있어서도 화폐의 액면가치와 실질가치의 사이에 괴리가 생길 경우 실질가치가 낮은 화폐 쪽이 유통하여 가치가 높은 쪽의 화폐는 퇴장하여 유통하지 않게 된다(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은 인물의 한 사람으로도 알려진다.
코페르니크스는 교회에서는 사교좌성당참사회원(司教座聖堂参事會員/카논)이고 지사, 장관, 법학자, 점성술사이고 의사이기도 하였다. 잠정적으로 영주사제를 시무하기도 하였다.(위키페디아)
천문학상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 하는 <지동설>의 제창자이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그 때까지는 <천동설>이 널리 믿어져서 지동설은 마치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설이었다.
더구나 지동설이 출판되게 된 것은 그의 사후이고 출판 후에도 믿는 자가 없었고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맏아들이게 된 것은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날 무렵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페르니크스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코페르니크그적 전환>이라 할 정도로 상식을 뒤집는 듯한 태도였고 그 자세가 수많은 발견을 낳게 한데서라고 해야 할 것인지 모른다.
<Revolution>이라는 말도 원래는 정치체제의 변혁이 아니라 코페르니크스와 같은 상식을 회전시키는 것과 같은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서 그의 존재가 후의 과학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출처= f:id:myworldhistoryblog:20190628130401j: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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