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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하에서 76년, 아인슈타인이 약 80년 전에 서명한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 개발을 요구하는 서간 내용은

간천(澗泉) naganchun 2021. 8. 9. 03:14

원폭 투하에서 76년

아인슈타인이 약 80년 전에 서명한 미국 정부에 원자폭탄 개발을 요구하는 서간 내용은

 

===* 오늘은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76년 째 되는 날이다. 이로 전쟁은 끝났으나 핵무장 경쟁의 역사가 열리는 결과를 낳았다.===*

 

아인슈타인

독일 출신인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로서 유명했었는데 1939년에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원자폭탄의 개발을 요구하는 서간에 서명하였다.

아인슈타인이나 기타 과학자들은 나치스 독일이 핵에너지를 써서 항구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타입의 매우 강력한 폭탄>을 만들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서한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개발 <만하탄계획>으로 이어졌다.

후에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기술개발을 권하는 이외에 당시는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하였는데 독일이 원폭 개발 바로 직전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 서한은 <큰 오류>였다고 말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개월 전 193982일 독일 출신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2쪽에 달하는 서간에 서명하였다. 이것이 핵군비 확장 경쟁으로 끌어들여 역사를 바꾸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나치스가 권력을 장악한 독일을 피하여 이미 미국에 있었다. 그래서 독일 과학자들이 <핵분열>을 발견한 것을 알았다.

서간은 이 발견에 의하여 <새로운 타임의 매우 강력한 폭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폭탄은 항구 그 주변지역 모두를 파괴할 수 있다고 루스벨트에게 경고하였다.

후에 아인슈타인이 <큰 잘못>이라고 말하게 된 이 서간은 루스벨트에게 미국에서의 우란 연구를 가속시키도록 요구했다.

 

아인슈타인의 경고는 알렉산더 삭스Alexander Sachs에 의하여 루스벨트에게 전해졌다. 폭탄에 관한 같은 경고를 전한 것도 이 인물이라고 당시의 뉴욕 타임스가 보도하고 있다.

루스벨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렉스 자네가 바라는 바는 나치스가 우리들을 날려버리지 않은 것인가>

삭스는 한 마디로 <그대로입니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루스벨트는 측근을 불러서 <이것은 행동을 필요로 한다.>고 전했다.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은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 레오 실라드Leo Szilard의 권유로 루스벨트에게 서간을 썼다. 실라드는 이 새로 발견된 기술을 독일이 무기를 만드는 데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라드는 헝가리 물리학자로 함께 난민이 된 에드워드 테라(Edward Teller와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는 그들의 심각한 걱정을 아인슈타인에게 전했다. 이것은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이라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토믹 헤리테지재단의 회장 신시아 케리Cynthia Kelly2017년 내셔날지오그래픽에 대하여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질량과 에너지는 모양이 다른 같은 것>이라는 발견이 이러한 무기개발의 토대를 만든 한편으로 <그는 틀림없이 이 이론을 무기로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은 에너지가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하여 상세를 밝힌 일은 없고 일찍이 <자기 자신을 원자에너지 해방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내가 다한 역할은 매우 간접적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서간은 효과가 있었다. 루스벨트는 193910월 아인슈타인의 서간을 받은 같은 달에 우란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Uranium를 만들었다. 이 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었는데 미국은 아직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자문위원회는 그 후 만하탄계획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미국이 이 극비 프로젝트가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그것이 1945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다수의 희생자를 내었다.

원폭 투하 수일 후 일본은 포스담 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하고 실질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나치스 독일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개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원폭의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 독일인으로 좌파 경향인 정치 활동가였다는 일로 아인슈타인은 안전상의 위험이 너무 높다고 보여서 만하탄계획에 참가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인슈타인은 <어쩐 일이던가>하고 말하였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독일 원폭의 개발에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알았으면 폭탄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리하여 전대미문의 대참사에로 서서히 향하였다.>라고도 아인슈타인은 경고하였다.

 

2005년에 공개된 편지로 아인슈타인은 일본인 친구에 대하여 <나는 일본에 대한 원폭 사용을 항상 비난해 왔는데 나는 저 운명의 결단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고 적고 있다.

1952년에는 일본의 잡지에 <이런 실험이 성공하면 전 인류로서 무서운 위험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다른 해결방법은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아인슈타인은 적고 있다.*

 

[원문=Albert Einstein wrote to the US pleading with the government to build an atomic bomb 80 years ago. Here's what he said.]

翻訳編集山口佳美

일본어원문=原爆投下から76…… アインシュタインが80年前署名した米政府原爆開発める書簡中身とは

출처=https://news.yahoo.co.jp/articles/2e177b3f5c72054c1af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