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쓴 시인은 두 갈레의 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한 길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딱 두 개였다. 딱 한 가지만 있을 때는 오히려 불안도 망설임도 생길 수 가 없지만 두 개 이상이 주어진 상태에서 골라야 할 경우에는 인간은 계산기를 두들기게 마련이다.
백화점에는 백가지나 넘는 물건들을 판다고 해서 당초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품목도 다양하고 한 품종에 다양한 브랜드들이 있어서 선택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어서 고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맞다.
그러나 나는 싫어하는 것, 내가 고르고 싶지 않은 것,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것이 제시된 메뉴판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이젠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다.
너무나 많은 세상의 골라야하고 ‘나를 고르라, 나를 고르라’하는 외압에서 갈등하면서 고르지도 못하고 갖지도 못할 것이면서 욕심을 누르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위의 시인은 사람들이 가지 않아서 아직은 풀이 무성한 그 길을 골랐다. 명확한 선택이다.
왜 골랐는지에 대한 자신에 대한 납득이 서 있기 때문에 ‘후회’가 없을 것이고 가령 ‘후회’라는 생각이 밀려오더라도 그것은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이 오래 흔들리지 않고 가는 길을 갈 수 있게 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뭔가를 고를 때 그런 용감하고 도전적인 정신을 가지고 고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것 같지도 않다. 수많은 선택사항 중에서 일단은 내가 싫어하고 내가 꺼려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가지치기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남은 것들 중에서도 또 다양한 기호나 이유를 들어 제거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 이유를 만든다. ‘딱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고른다기 보다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그중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을 고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불쌍한가.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니 말이다.
선택이 자유롭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불안의 씨앗이 된다고 ‘로마인이야기’에서 ‘시오노나나미’는 말했다.
선택이 자유로운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그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인가가 문의되어지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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