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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자식들은 모른다

간천(澗泉) naganchun 2012. 11. 12. 04:38

 

자식들은 모른다

 

 

 

어느날 부모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다가 부모님의 다리에 난 상처 자국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거나 하면서 등의 뼈가 완곡하게 구부러져 돌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항상 잡숫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여지도 없이 자식들은 저마다 바쁘고 정신없이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시간은 지난다.

 

부모님들은 다 알고 있다. 아이의 어디에 점이 있으며 언제 어디서 엎어져서 무릎이 깨진 자국이 아직도 있는지를.

아이의 먹성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꺼려하는지를.

아이의 속사정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즐거워하고 어떤 경우에는 몹시 불안해하고 어떤 입장에 처했을 때 회피하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들의 무리에서 난처해하는지를.

 

자식들은 모른다. 부모님의 구석구석을 알 겨를이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알아야 되는 줄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외부에서 손톱만큼도, 단 1미크론도 깊이 들어가 보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 속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아니 마음까지는 못 헤이리더라도 부모님의 세월 속에 어떤 외상이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그 외상이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어떤 아픔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지, 부모님의 몸 안에서 어떤 ‘놈’들이 잠식하면서 부모의 몸을 괴롭히는지 생각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식들은 모른다. 부모님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자기들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 한다. 그게 자식이란 생명체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그걸 아는가보다. 자기들이 낳은 생명체이지만 이미 ‘전혀 다른 남의 존재’들임을.

 

부모님은 아이의 스캐너다. 겉과 안을 모조리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전혀 아이들에게 ‘내가 너를 잘 안다. 그렇지만 “너를 잘 모른다.”는 듯이 겸손하게 자식들 뒤에서 그림자처럼 가만히 묵묵히 배경이 되어 준다.

 

아이들은 그런다. 자기들 심사가 뒤틀어지면, “엄마가 뭘 알아, 아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면서 투정을 부리고 온갖 책임을 부모의 탓으로 돌린다. 못된 책임회피다.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부모 탓하는 위인들이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식들 탓 하지 않는다.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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