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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성

비참하게 생을 마친 여성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2/5)

간천(澗泉) naganchun 2023. 8. 8. 03:28

비참하게 생을 마친 여성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2/5)

 

 

2. 로댕과의 만남

 

1883년 부셰(Alfred Boucher)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기 전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이자 친구였던 오귀스트 로댕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위탁했다. 부세는 로댕(프랑스어: 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년 11월 12일 - 1917년 11월 17일)에게 특히 카미유의 지도를 부탁했는데 이때 비로소 로댕과 카미유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카미유의 나이는 19, 로댕의 나이는 43세였다.

 

이미 20년간 동거하고 자신의 아들을 낳은 여자 로즈 뵈레가 있었던 로댕은 당시 19살이었던 카미유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때 로댕의 도움없이 루이즈를 모델로 '16세의 내 동생'을 완성했는데 로댕은 극찬했다.

훗날 카미유는 폴을 모델로 '37세의 폴 클로델''42세의 폴 클로델 흉상' 을 제작하기도 했다.

또 카미유를 짝사랑하던 모델 지강티를 조각한 '지강티의 흉상'1885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의 생명력은 말할 것도 없이 마치 살아있는 듯해 로댕은 카미유의 재능에 다시 놀라게 된다.

 

1885년 카미유는 가족과 상의 없이 로댕의 권유로 로댕의 작업실에서 제자 겸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댕과 카미유는 늘 함께 있으면서 애정을 키워나갔다.

24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더욱 커져갔다. 로댕은 언제나 자신이 참석하는 모든 사교계에 카미유를 동반하고 다니며 카미유가 대단한 조각가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미유가 작업실에 나오기 시작하자 여자 모델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왜 같은 여자 앞에서 옷을 벗으라는 것이냐는 둥 빈정거리기 일쑤였으며 작업실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1887년 카미유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정식으로 로댕의 조수로 일하면서 로댕의 작품인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입맞춤> 등의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둘은 사랑을 위해 광란의 뇌부르그로 불리는 집과 투렌느 이즐레트 성을 빌렸고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이 때 로댕은 카미유를 '공주님'이라 칭하며 거리낌없이 사랑을 표출했다.

이 시기에 카미유는 '뇌부르그의 광란', '이교도의 농지', '사쿤탈라' 등의 작품을 조각했고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