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의식의 수수께끼는 양자물리학으로 해명되는가?(2/2)
양자역학의 측정문제
이것은 너무나 기묘한 이야기로서 경험에 반하기 때문에 그런 이론은 곧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혹시 양자역학이 어림도 없이 높은 정도로 실험 데이터에 맞지 않는다면 당신의 그 반응은 단순히 일반적일 뿐 아니라 바른 반응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는 한 양자역학은 최대급으로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들 과학자는 직관에 반하는 양자역학의 이 특징을 이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계속해 왔다.
문제는 그래서 연구하면 할수록 이야기가 이상하게 된 것이다. 양자역학의 방정식 중에는 많은 가능성이 흐리멍덩하게 섞인 상태에서 측정결과로서 얻어지는 하나의 확정한 상태로 실재가 어떻게 해서 이행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 혹시 실험에 맞는 양자역학의 방정식이 당신이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전자( 기타의 입자)만이 아니라 당신의 실험장치나 당신 자신이나 당신의 뇌를 구성하고 있는 전자( 기타의 입자)에도 맞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그것은 전혀 타당한 가정이라고 생각된다.--, 양자역학의 수학에 따르면 그런 이행은 일어날 이가 없는 것이다.
혹시 1개의 전자가 2개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면 당신의 실험장치는 전자를 그 2개소에서 검출된 셈이다. 그래서 당신이 그 장치의 표시를 읽어내면 당신의 뇌는 전자는 그 2개소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터이다. 곧 당신의 연구대상인 입자의 흐리멍덩한 양자적인 상태는 측정 후에는 당신의 장치에도 당신에게도 다시 당신의 의식에도 감염하여 당신의 사고는 두 개의 결과가 애매하게 섞인 상태로 떠돌게 된다.
그런데 어떤 측정을 행하여도 당신이 그런 결과를 보고하는 일은 없다. 보고에 따르면 실험을 하면 하나의 확정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측정문제>>라 해서 알려진 것으로 우리들이 당해야할 과제는 방정식이 기술하는 흐리멍덩한 양자의 실재와 측정을 할 때마다 경험하는 선명한 실재와의 불가사의한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다.
의식은 양자역학으로 말할 수 있는가
거슬러 올라가서 1930년대의 일로 물리학자인 프리스 론돈(Fritz Wolfgang London, 1900- 1954년=독일 태생의 물리학자)과 에드몽 바우어(Edmond Bauer, 1880-1963, 프랑스 물리학자), 그리고 수년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유진 위그너( Eugene Paul Wigner, 1902-1995) 는 그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의식에도 있는지 모른다고 하는 설을 내놓았다.
막힌 곳 이 수수께끼가 되는 것은 하나로 확정한 실재에 대하여 당신이 의식적으로 경험한 일에 대하여 당신이 무엇인가를 보고하고 당신의 보고와 양자역학의 수학에 의한 예측과의 사이에 걸맞지 않음이 생길 것이기 때뿐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룰은 측정된 전자에도 측정을 행하는 장치를 구성하는 입자에도 그 측정 장치의 표시를 구성하는 입자에도 맞는다고 생각하라. 그러나 당신이 그 표시를 보고 시각정보가 뇌에 흘러 들어가면 무엇인가 변화한다. 표준적인 양자의 법칙이 맞지 않게 된다.
의식이 등장하면 양자의 법칙이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바뀐다.--그 무엇인가는 당신에게 작용하여 하나의 확정한 결과를 당신이 확실하게 인식하게 하는 프로세스이다.
그래서 의식은 양자물리학에 밀접하게 관계함으로써 세계가 진전함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특징 중 하나를 남기고 다른 가능성은 모두 제거되도록 명령한다.-- 그들 가능성이 실재 자체에서 제거되는지 혹은 적어도 우리들의 의식에서 제거되는지는 불문하고.
이 사고방식의 매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수수께끼투성이이다. 이 보통의 수수께끼가 서로 관계하고 있다든지 실은 같은 것이라든지 한편의 수수께끼가 다른 편의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든지 상상해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그러나 내가 이래저래 몇 십 년이나 양자역학에 몰두해왔는데 그런 연결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오랜 동안 품고 있던 평가--그런 연결은 없다고 하는 평가--를 덮을만한 수학적인 의론이나 실험데이터를 만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실험과 관측이 지지하는 것은 양자적인 계(系)에 조금이라도 낸다면--그것을 하는 것이 의식적인 존재인가, 마음을 가지지 않는 탐사기인가에 따르지 않고-- 그 계는 흐리멍덩한 양자의 확률적인 세계에서 뛰쳐나와서 일순에 확정한 실재를 몸에 두른다는 견해이다.
하나 확정한 실재를 출현시키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물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혹은 그것에 관계하고 있다면 어째서든지 무엇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나는 자신의 의식을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측정의 프로세스에 자신의 의식적인 마음을 참가시키지 않으면 얻어진 결과에 신경을 쓸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양자역학에 있어서 의식은 무엇인가 특별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한 알기 쉬운 의론은 없다.
그래도 제안하고 있는 것 같은 양자와 의식의 결합은 더더욱 세련시키고 싶은 몇 개의 어프로치에 있어서 조차--그런 어프로치는 일견하여 다른 양자역학의 수수께끼와 의식의 수수께끼를 표면적으로 같다는 레벨을 크게 초월하고 있는 것인데--약하다.
양자역학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면 신체와 뇌를 포함하여 모든 것의 기능의 기초가 되는 미시적 물리학의 프로세스에 대해서의 설명도 깊어질 것이다. 물리주의의 입장으로 하면 의식은 그런 기능의 하나이니까 언젠가는 양자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앗 하고 놀랄만한 무엇인가가 일어나지 않는 한 가까운 장래 혹은 먼 장래마저도 양자역학의 교과서에 의식만을 위한 특별한 지시가 적혀 더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의식은 훌륭한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양자적 우주에 생기는 물리적 특질의 하나로서 이해될 것이다.*
(번역 : 아오키 가오루/青木 薫)
일본어원문=心と意識の謎は量子物理学で解き明かされるのか?
출처=https://gendai.ismedia.jp/articles/-/90275?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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