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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월요단상

락카룸에 가 보세요!

간천(澗泉) naganchun 2012. 2. 20. 05:40

 

락카룸에 가 보세요!

- 좋은 서비스를 원하는가? 답은 락카룸에 있다 -

 

 

최근 돈도 벌고 머리로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아르바이트로 호텔 주방 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초특급 호텔의 종업원들이 잠시 머무는 락카룸을 보고서 마음이 언짢았다. 번지르르한 호텔의 지하 4층 종업원 락카룸은 이런 모양이로구나!

화려하고 분위기 좋은 로비, 각종 고급 레스토랑들, 복도, 그리고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사장실, 임원실 등을 떠올려보며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익빈 부익부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감정노동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매우 좁은 통로. 근무복으로 갈아입는 곳도 그냥 바닥이고 벗은 옷가지와 신발 소지품가방을 둘 곳을 마련해 주지 않고 그냥 아무데나 두라는 관리자의 말. 무게 500 그램은 나감직한 자물쇠로 꽁꽁 잠겨 있는 목욕탕 락카 같은 빽빽한 장들. 몸을 돌릴 여유조차 없이 빽빽이 몇 겹으로 들어선 장들이다. 여기에 그 호텔에 근무하는 약 몇 백 명의 직원이 여기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할 것이다. 그나마 자주 교체되는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의 경우에는 락카 한 곳 조차 배당받지 못하고 바구니조차 없이 이렇게 하루 일하고 갈 것이다.

 

그냥 이래도 되는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내부 고객, 즉 자기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영이 뜨고 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과 소통한다, 직원들과 1일 포차 간담회를 연다, 직원들에게 손수 차를 대접한다, 매일 이메일로 직원에게 CEO 가 직접 메시지를 전한다, 직원 가족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다, 직원들이 결제 방식을 직통으로 사장에게 전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사내 신문고를 만든다는 등 직원의 기분을 좋게 하여 서비스 품질을 좋게 하고 고객들로부터 신뢰받아 이익을 올리려고 온갖 애를 쓴다. 해외여행은 물론, 직원들과 영화를 본다, 직원들 미용실 쿠폰을 준다, 건강마사지 쿠폰을 선물한다는 등 직원을 기쁘게 하는 묘안도 가지각색이요, 특히 기업의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직원들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치 담그기나 연탄배달 등등 직원과 임원이 함께 등장하는 깜짝 메뉴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기업PR의 일환으로 뉴스에 자주 오르게 하려고 보도 자료도 많이 돌린다.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주기 위하여, 기업에 입사하려는 인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중요한 작업이다. 기업에서는 이런 작업에만도 엄청난 홍보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

 

그런데 직원 락카룸을 잘 꾸며준다거나 락카룸을 자주 들러서 생각해 본다는 사장님에 대한 뉴스나 미담(美談)은 별로 그다지 들어 본 적이 없다.

 

직원들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줄까 고민하시는 사장님들, 회사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직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사장님들께 직원들이 탈의를 하고 소지품을 보관해두는 락카룸을 한 번씩 둘러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나는 직원들을 챙긴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이루어지는 보여 주기식 답사가 아니다. 진정 직원들이 각각의 일선 현장에서 일에 매진할 수 있을 시간이나 출근 전, 퇴근 후 비어있는 시간에 한 번 가만히 락카룸으로 향하는 복도와 락카룸 일대를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사장실이나 임원실과 다른지 진심으로 느껴봐야 한다. 그들의 절실함이 어떤 것인지를 한 번 찾아보라는 것이다.

사장실이나 임원실, 각자의 책상을 가지고 일하는 사무직 직원들이 지내는 공간이 아니라

옷 한 벌 걸어두고 출근 시 가져오는 가방 하나 두고, 양치에 사용하는 칫솔 정도 두는 공간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보라. 넉넉한 공간인가? 우르르 퇴근시간에 몰려 옷이라도 갈아입으려면 혹시 부대끼면서 서로 힘들게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서둘러야 하는 그런 좁은 공간들은 아닌지?

자신들의 꿈을 꾸깃꾸깃 쑤셔서 접고 접어서 펼칠 새도 없이 구겨져 있는 채로 운신의 폭이 좁은 공간은 아닌지? 새로 들어 온 정말로 말단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그야말로 외주 업체 직원이 와서도 당당히 그 작은 락카 한 곳을 얻어서 소지품을 놓고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한두 개 여분의 락카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지?

혹시 여럿이서 한 개의 락카를 공유해야 하는 그런 곳은 아닌지?

자신들의 비루한 소지품이나마 담아두고 안전하게 잠가두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보안은 되는 곳인지? 축축한 저 뒤의 어수룩한 곳이나, 지하 몇 층 밑에 있는 공간은 아닌지?

 

공간은 그야말로 돈이다. 서비스 업체에서도 백화점, 극장, 문화센터, 대형할인점, 호텔, 식당 등등 이런 곳은 손님이 와서 체재하는 곳이 돈이다.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잠시 옷을 맡기는 공간은 최소한도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직원들이 회사에 보다 깊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고 돈을 가져다주는 고객들에게 보다 감정적으로 안정적이며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사장님, 임원실로 향하는 복도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화려하지 않아도 쾌적하다. 넓다.

사장님의 공간, 치장된 인테리어 비용을 조금 줄이고 직원들, 그야말로 현장에서 고객의 돈을 받아내야 하는 일선 근로자들이 꿈을 꾸겨놓은 락카 룸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넓혀주라. 옷을 보관할 락카가 없어서 바닥이나 다른 사람 락카 위에 임시로 얹어서 하루 종일 불안해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일용직 근로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서비스업은 바로 락카룸에서 시작된다. 답은 락카룸에 있다.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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